2017. 9. 1. 16:59

ㅇ븨, ㅂ백작. 백작 시선.

 

 

 

 

 

 

 어슴푸레 눈을 떴을 때는 아직 새벽에 접어든 밤이라 방안은 푸르스름한 빛에 잠겨있었다. 익숙한 천장을 잠시 마주하다 몽롱한 정신을 이끌고 상반신을 일으켰다. 손을 뻗자 촛농이 식어 굳은지 한참 된 초가 손끝에 걸렸다. 눈은 적응돼 어둠 속이 편했지만 백작은 더듬거려 선반 위에 올려둔 성냥갑을 찾고는 성냥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촤륵, 불꽃이 화르륵 타올라 생성되더니 일렁이며 주위를 밝혔다. 인기척도 살아있는 숨결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은 겨울이 되면 유독 차가워 백작의 넓기만 한 자택은 버려진 폐허처럼 느껴졌다. 보름달이 뜨는 날이 다가와 제 안을 흘러 다니는 피가 굶주림을 불러 사람을 유혹하는 밤을 제외하면 이 집은 늘 정적에 들이차 있었다. 숨을 쉴 수 있는 공기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밀폐되어버린 장소처럼 시간이 멈춘 채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것 마냥 고요한 장소. 이 방 안에서 흔들리고 있는 건 백작 손에 들린 성냥의 불꽃뿐이었다. 온기가 느껴지는, 산소를 필요로 하는 단 하나의 물질. 연소.

 

 

 

 점점 타들어 없어지는 성냥을 바라보다 사그라드는 불꽃을 초에 옮겨 붙이고서 백작은 훅, 가볍게 입김을 불었다. 사라져버린 불꽃을 내려다보던 백작은 초를 들고 제 방 밖으로 걸어 나왔다. 커다란 거실로 걸어 나오자 보이는 건 소파에 몸을 웅크린 채 잠들어 있는 청년이다. 급격히 피를 빨려 정신을 잃었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겠지만 어찌되었든 백작에게 있어 그 존재는 소중했다. 제 죽음을 장식해 줄 수 있는, 저에게 안식을 선사해줄 수 있는 유일한 종착역.

 

 

 

 

 

 

 

 사랑받고 싶다고, 시간을 뛰어 넘어 과거로 날아든 청년은 느닷없이 제 앞에 나타나선 어떻게 하면 저처럼 될 수 있냐고 물었다. 그건 백작이 지금껏 들었던 질문 중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그러는 한편 때묻지 않아 가장 순수했다. 순박한 청년은 제멋대로 이야기를 떠들어댔고 백작은 그가 말하는 이야기 중 두 가지 요소에서 마음이 움직였다.

 

 

 

 

 

 제가 멋진 사람이 되어서, 엄마가 우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요.

 

 제가 좋아하는 메텔이 저를 좋아해줬으면 좋겠어요.

 

 

 

 

 

 엄마,

 

 연인.

 

 사랑.

 

 

 

 

 

 백작이 더 이상 세지도 못할 계절을 되풀이하고 홀로 고독히 보내면서 지내온 세월 속에 묻혀버린 생(生) 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철부지 없는 청년이 피아노 건반을 치듯 건드렸다. 청년의 이야기는 평범하기 짝이 없었지만 백작은 드물게 공감대를 형성했고 호기심을 보였다. 때마침, 아니 형편이 좋았던 것일지도 몰랐다. 이 청년을 나의 사신으로 삼으면 좋겠어. 죽지 못하는 나를 죽여줄 수 있는 상대로. 이제 이 무료하고 지루하기만 한 삶을 끝낼 수 있을 지도 몰라.

 

 

 

 

 

 그러는 한편 청년에게 충고했다.

 

 그 누구도 사랑하지 말라고.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말한 것은 동정 따위가 아니었다. 그 말을 마음속에 품고 저를 죽일 때 크나큰 분노로 작용할 수 있게 만들 방아쇠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내 죽음으로 향한 트리거가 되어줄, 절대적인 요소.

 

 

 

 

 

 목에 날카로운 이를 박았다. 먹잇감처럼 전부 피를 흡혈하는 것이 아니라 제 동족으로 만들기 위해 일부만을 흡혈하고 청년이 제 피를 마시게 유도함으로써 저와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을 종용했다. 나약한 인간이 느닷없이 초인적인 힘을 내세워 제 목덜미를 물었을 때 백작은 처음 겪는 상황에 작게 신음하며 기꺼이 제 피를 내주고 의식을 치렀다. 그렇게 청년을 뱀파이어라는 동족으로 만들어 그를 그가 살고 있는 시간대로 돌려보냈다. 백작이 청년이 있던 시간까지 살아가려면 몇 백 년이었지만 처음으로 백작은 살아가는데 흥미를 느꼈다. 죽어가기까지의 카운트다운이라니. 기한이 정해져있다는 건 얼마나 유쾌한 일인가. 지겹기만 하던 여흥도, 언제나 보던 익숙하다 못해 고리타분한 풍경도, 인간의 끊임없는 욕정이 묻어나 질척거리는 시선도 조금만 더 버티면 될 일이었다.

 

 

 

 

 

 프로세서 V.

 

 백작에게 청년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도 자신의 마지막을 선사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니 애정을 붙이기로 했다.

 

 

 

 

 

 - 달링.

 

 

 

 

 

 그 단어는 백작의 애인이 죽고 나서는 단 한 번도 입바른 소리로 사용해본 적이 없는 애칭이었다. 백작은 손에 끼워진 커다란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이제는 어땠는지도 기억나지 않은 마음을 반추하며 유품만이 남은 반지를 더듬었다. 의미를 부여해본 것은 어머니와 과거의 연인 이외에 그가 처음이다. 기왕이면 내게 달콤한 죽음을 선물해줄 사람이니 호칭에는 애정을 담는 게 좋겠어. 네가 살아가는 시간까지 나는 살아갈 테니, 그 때 부디 나를 죽이러 와줘.

 

 

 

 

 

 청년에게 소중한 사람이 어떤 것인지는 쉽게 알았으나 백작은 상관하지 않았다.

 

 

 

 너는 살아있기만 하면 돼. 그리고 너의 그 어리석은 사랑이 최후를 맞이할 때, 나를 증오하며 죽이면 돼.

 

 

 

 

 

 비극적일 것도 없었다. 죽음은 사치였고 사는 건 저주의 속박에 갇힌 제 굴레였다. 목숨만 연명하는 삶에 남아있는 의미는 없었다. 무기력했던 삶. 의욕 하나 남지 않은 빈껍데기.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보다 못한 생. 그것도 이제 종지부를 찍을 때였다. 끝이 보인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러니 몇 백 년 정도는, 더 견딜 수 있었다. 지나고 나면 한 때의 찰나일 것이다.

 

 

 

 

 

 

 

*

 

 

 

 

 

 

 

 청년이 태어나지 않은 몇 백 년이란 시간을 보내는 건 생각보다 고역이었다. 지나간 후에 지나간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상대적으로 빨랐다고 느껴졌을지도 모르는 시간이었건만 백작에게 있어서는 지금까지 겪어왔던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이었다. 먹잇감을 위해 성 밖으로 발길을 나서면 어김없이 많은 인간들이 저에게 현혹되었다. 여자들은 저에게 매달렸고 남자들은 힐끗 저를 쳐다보다 귓가에 한숨을 남겼다. 어차피 한날 먹잇감인 건 똑같아 백작은 인간들이 저를 어떻게 갖고 싶어 하는지 가만히 제 육신을 실험체마냥 내버려뒀다. 인간의 기본 상식과 규율은 저에게 그 어떤 의미도 남기지 않았으므로.

 

 

 

 아름다운 신체에 허기진 인간들은 저에게 키스를 하며 안아달라고 애원했고 안기를 원하는 취향도 있었다. 허락을 구한 사람들은 걸신에 들린 듯 제 몸을 애무하며 아름답다 탄성을 지르며 제 몸을 취하고는 했다. 인간들의 욕정의 대상이 되어 그들이 일방적으로 탐닉하는 쾌락에서 같이 즐거움을 느꼈는가 하면, 그 어떤 것도 없었다. 시간을 때우는 동안 이런저런 짓을 다 해봤지만 인간을 상대로는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청년이 태어나는 시간대로 시간이 접어들었고 백작은 제 분신으로 나비를 청년에게 붙여놓았다. 그리고 제 사신이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저에게 말했던 것처럼 단 하나도 거짓 없는 그의 삶 속에서 연민을 느꼈다.

 

 

 

 

 

 모성애를 느끼지 못하고 자라와 애정 결핍이 되어버린 삶.

 

 그 허기진 감정을 메우기 위해 모든 걸 던지고 몰두하는 또 다른 사랑.

 

 

 

 

 

 과정은 다르나 공통되는 요소와 결론되는 도출이 비슷했다. 이거야 정말로, 날 죽일 상대로 제격이군. 기다린 의미가 있었어.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백작은 청년의 눈앞에 바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청년은 가끔 의아한 것처럼 얼굴을 두리번거렸지만 제 시선을 끝내 눈치 채지 못했다. 청년이 교수가 되었을 때 백작은 월간 뱀파이어 잡지를 보냈다. 그는 과학에 의지하는 사람이었으나 제 자신을 둘러싼 여론의 압박에 견디지 못해 그 잡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똑똑하다고, 천재라고 불리는 인간일수록 주위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건 다를 것 없었다. 그 청년은 엉뚱한 발상으로 타임머신을 만들었고 백작이 살고 있던 시간대로 날아갔다. 그제서야 모든 것이 맞물리기 시작했다.

 

 

 

 

 

 

 

 

 

 그 이후부터 청년은 인간이 아닌 삶을 살게 되었다. 인간으로서 살던 최소한의 도덕적인 양심은 있어 그는 동물로부터 피를 연구하거나 헌혈센터를 습격하는 등 저에게 주어진 운명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온갖 발버둥을 쳤다. 악마와 계약을 했다고, 보름달이 뜰 때면 사람을 습격하고 죽게 만들어 후회하며 도망가는 그를 볼 때마다 모습을 드러내고 싶은 걸 참았다. 아직 이야기는 절정에 이르지 않았다. 달링, 이제 몇 남지 않았어. 조금만 더 힘을 내서 다가와.

 

 

 

 

 

 사랑하지 마.

 

 

 

 

 

 충고는 청년이 제가 짝사랑하던 메텔을 만났을 때 부서졌다. 나는 당신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뱀파이어가 되었어요. 하지만 같이 있으면 분명 당신을 죽이고 말 거야. 제 자신을 가둬버린 청년에게 메텔이 다가오고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던 청년은 본능에 지배당해 그녀의 목을 물었다. 가녀린 영혼이 세상을 떠나고 백작은 모습을 드러냈다. 사랑을 잃은 청년에게 백작은 속삭였다.

 

 

 

 

 

“달링.”

 

 

 

 

 

 애틋함이 담겨있는 백작의 목소리와 다르게 청년의 눈은 분노로 발화점이 끓어오른 상태였다. 살기가 향하는 목표가 너무나도 뚜렷했다.

 

 

 

 

 

 단검이 백작의 심장을 단번에 찔렀다. 푹, 날카로운 금속이 저를 관통한 순간 몸이 비틀거렸다. 고통이 격습했다. 아, 드디어 죽는 건가. 제 가슴을 찌르는 검을 놓으려하는 청년의 손을 억세게 붙잡았다. 증오가 아닌 죄책감으로 물드는 그 눈을 보며 백작은 가늘게 웃었다. 기다려왔던 일이야. 너는 내 죽음을 지켜봐. 이번 일을 통해서 누구도 믿지 말고, 누구도 사랑하지 마. 떨리는 그 손을 감싼 채 백작은 잔인해질 수 없는 청년의 이가 제 목을 무는 감각을 느꼈다. 죽음이 밀려오고 있었다. 고대해왔던 그 순간이 엄습하고 있었다. 목덜미로 뜨거운 액체가 떨어졌다. 피도 땀도 아닌 청년의 눈물이었다.

 

 

 

 눈물을 아껴, 달링.

 

 

 

 흐려지는 의식 속에 나오지 않을 말이 입 안을 맴돌았다. 별거 아닌 인생이었지만 제 죽음에 환희를 느끼는 저와 달리 슬퍼하는 자가 있다는 건 신기한 감각이었다. 달링을 만난 건 아주 나쁜 일은 아니었을 지도. 너에게 있어 나는 불행의 시작이었겠지만. 생각의 파편이 하나 둘 흐릿하게 꺼져갔다. 불꽃처럼 사그라지는 의식으로부터 끝을 느꼈다. 살아생전 고독하게 보내다 죽을 때가 되어서는 혼자가 아니니. 일찍이 너에게 아는 척을 했더라면 잘 지낼 수도 있었을까. 생각하기에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네가 나의 죽을 장소라 다행일지도 모르겠어. 백작은 제 최후의 순간에 연인이 죽었던 이래 처음으로 인간 같은 생각을 했다. 

 

 

 

 

 

 

 

 

 

ㄴ님 리퀘글.

마동끄 딥디를 강제 시청 당하고는 리퀘를 받았는데 잘 모르겠어요

 

ㅂ백이 섹시하고 ㅇ븨가 귀여운 것밖에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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