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를 당한 32살의 마크가 몸이 어려져 기억을 가진 채로 12살의 어린아이가 되고, 세르주가 어려진 마크를 마크의 숨겨진 아들이라 생각하고 후견인으로서 같이 동거하는 이야기.

※ 사망, 트라우마 소재 O.

※ 한참 후반 즈음에 수위 예정.(시기는 37살 세르주 x 17살 마크) 비윤리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순차적인 시간 흐름으로 진행되지만은 않습니다. (대략적인 시기가 어느 쯤인지는 알 수 있도록 적고 있습니다.) (ex.현재>과거>현재>과거>현재>미래...)

수위가 나오기 전까지는 평탄하게 흘러갈 것 같습니다.

 

 

 

8. 제자리

 

 

 

32살이었던 세르주에게 당신에게 마이크는 어떤 존재인가요?’ 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제 가장 친한 친구의 아들이요. 지금은 제 아들이라 생각하고 키우고 있어요.’

 

데려왔을 당시나 거리감을 몰라 서먹했지 두 달이 흐르고 세 달이 지났을 때는 사실상 세르주에게 있어 마이크는 가족이었다. 제 아들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소중한 아이.

 

세르주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아이의 공백을 채워주려 노력했고 친구의 아이를 제 자식처럼 여기며 평온한 생활을 보내려고 했다. 당사자인 마이크에게 물어본다면 처음 이 집에 왔을 때는 사고를 당한 직후라 힘들었지만 그래도 1년은 보호자를 잘 만나 평화롭게 보냈다고 대답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딱 1년은.

 

 

 

 

 

마크의 경우 그가 자발적인 의지로 잠적을 타 사라진 게 아니었다보니 일반 실종은 아니었다. 사고에 휘말려 시신을 찾을 수 없는 실종은 특수 실종으로 분류가 되었는데 기한이 1년이었다. 유효기간이 지나면 서류상으로는 실종이 아닌 사망 처리가 되었다.

 

그 날이 오지 않기를, 그 날이 오기 전에 마크가 나타나기를.

 

세르주는 늘 간절히 생각했다. 기적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럴 때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는가.

 

세르주는 특정 종교를 믿지 않았다. 믿는 신은 없었다. 미신 같은 건 하물며 살면서 염두에 둔 적도 없다. 귀신이 나타난다니 유령에 대한 건 허상으로 뜬구름 잡는 소리에 가까웠다.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는 현상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때도 있었다.

 

앞서 말한 서술형의 시제처럼 전부 과거형이었다. 세르주는 어느 기점부터 주말이면 교회에 꼬박꼬박 나갔고 타로카드 점을 보기도 했고 사람을 찾는 의뢰도 맡겨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풀려가는 동아줄이라 하더라도 손에 쥐어진 올을 마냥 놓을 수 없는 것처럼.

 

 

 

 

마이크와 처음 맞이하던 할로윈 날, 세르주가 초인종을 누르자 문이 열리더니 세르주를 맞이하려 기다리던 마이크가 튀어나왔다. 드라큘라 컨셉인지 머리에는 악마 뿔이 달린 머리띠를 쓰고 있었고 센터에서 빌려준 망토로 추측되는 것을 두르고 손에는 호박 모양의 등불 같은 장난감을 들고 있었다.

 

 

“Trick or Treat!”

 

 

할로윈과 어울리는 복장을 입고서 인사와 함께 저에게 작은 손바닥을 당당하게 내보였다. 세르주는 비장한 얼굴로 씩 웃더니 검은 모직코트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낱개로 포장된 사탕과 초콜릿을 꺼내 아이의 양손에 한아름 쥐어줬다. 무지개색 회오리 막대사탕까지 그 위에 얹어주고서 기다리자 마이크가 환하게 웃었다.

 

 

들어오셔도 돼요!”

 

 

마이크는 손바닥을 가득 채운 작은 간식들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짐이 한 가득이었던 세르주에게서 무겁지 않은 케이크를 받았다. 테이블 위에 케이크 상자를 내려두자 세르주가 근처로 다가와서 짐을 내려놓는 걸 보고서 순진한 얼굴로 마이크가 물었다.

 

 

아저씨도 할로윈 같은 기념일 좋아해요?”

주위가 들썩이며 신나있는데 딱히 싫어할 이유가 있나? 행진한다면서 도로 통제가 들어가 일정 구간 차가 막히는 건 싫지만 그거 외에는?”

 

 

세르주가 가져온 봉투 안에 담긴 것들은 죄다 음식이었다. 칠면조며 와인이며 음료수며 이것저것 한 가득 사왔는데 두 명이서 다 먹기엔 과한 양이었다. 마이크는 제가 좋아하는 간식들을 발견하고서 와아아, 처음엔 기뻐하다가 봉투 안이 비지 않자 나중엔 떨떠름한 감탄사를 내뱉으며 봉투 안에 담긴 것들을 테이블 위에 하나씩 꺼내서 진열했다.

 

 

이거면 파티를 벌여도 될 것 같은데

네가 오고 나서는 처음이지 않니? 이런 날 기분 내지 않으면 언제 내겠니. 남는다고 버릴 것도 아닌데 오늘은 좀 봐주렴.”

 

 

마이크가 식탁에 세팅을 하면서 중얼거리는 말을 들은 건지 손을 씻고 겉옷을 벗고 온 세르주가 마저 봉투 안에 들어있는 것을 꺼냈다. 마이크는 잠시 손을 멈추고 물끄러미 세르주를 쳐다봤다. 같이 먹을 생각으로 즐겁게 골랐을 모습이 눈에 선해 무언가 말하려다 마이크는 입을 다물었다.

 

 

그것도 그래요. 남는 건 내일 먹으면 되니까요.”

 

 

마이크는 드물게도 세르주의 의견에 동조했다.

식탁에 음식과 식기 세팅을 마치고서 둘은 마주앉았다. 세르주는 무언가를 깜박한 것처럼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는 길에 오면서 보니까 날이 제법 선선해서 시원하던데. 창문 열어도 될까?”

. 환기도 할 겸 좋아요.”

 

 

허락을 구하고서 세르주는 거실에 위치한 창문을 열었다. “추우면 언제든 말하렴. 그 땐 닫을 테니.” 그 말에 네에, 밝은 목소리가 돌아왔다. 식탁으로 돌아온 세르주는 오랜만에 보는 만수성찬을 보며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였다. 사진 한 장 이따 찍어둬야겠네. 의자에 걸린 검은색 양복 자켓 포켓에서 지포라이터를 꺼내더니 오늘의 저녁 식사를 빛내줄 케이크 앞으로 다가갔다. 기념일답게 레터링 케이크는 초콜렛으로 입혀진 집 모양을 중심으로 주황색 호박이며 하얀 거미줄이나 유령, 검은 박쥐의 장식이 그려진 할로윈 컨셉이었다. 마당 배경 색상은 식용으로는 좀처럼 쓰지 않는 보라색 배경에 노란색 장식으로 되어있어 키치한 색감이 만화에 나올 것처럼 인상적이었다. 평소 세르주를 생각해본다면 정말로 고르지 않았을 케이크 선택이었다.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이 케이크, 아저씨 취향이에요?”

 

 

마이크도 특이하다 생각했는지 옆에서 재잘거렸고 세르주는 나는 나이가 있어서 생크림 케이크가 더 좋단다. 네가 좋아할 거 같아서 사왔는데 별로니?” 질문을 던지며 초에 불을 붙였다.

 

 

모양이 예쁜 걸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그렇지만 중요한 건 맛이죠.”

 

 

받아치는 말은 어린애다운 감상이라기에는 애늙은 감이 있었다. 사기 전까지 나도 그런 의심을 안 해봤던 건 아니지만 설마 내가 사전 조사도 안 하고 샀을 리가. 난 이런 이벤트성 준비는 철저하다고? 세르주는 그 말에 흐흥, 웃었다.

 

 

이래보여도 케이크 예약이 어려운 곳이었단다. 분명 맛있을 거야. 내 말이 맞을 걸? 두고 봐!”

 

 

자신만만하게 말하고서 초에 불을 전부 붙였다. 준비를 다 마치고서 마이크가 전등 스위치를 껐다. 실내가 어두워지고 초 주위만 밝게 빛나니 제법 그럴싸한 분위기가 잡혔다.

 

식탁에 케이크를 두고 둘은 마주앉았다. 마이크와 같이 노래라도 짧게 부르거나 기념의 덕담이라도 한 마디씩 주고받고 초를 끌 생각이었는데 어른거리는 촛불과 케이크의 호박 장식이 눈에 들어온 순간 세르주는 무엇인가 홀린 사람처럼 불빛을 바라봤다. 세르주는 입을 열지 않고 가만히 열려있는 창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해야 할 일을 갑작스레 잊어버린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케이크의 초와 함께 창밖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마치 이 공간에 저 혼자만 남겨진 사람 같았다.

 

 

할로윈은 죽은 자들이 돌아오는 날이다.

 

 

죽지 않았다고 믿고 싶은 심정과 별개로 죽었더라도 마크의 형체 비슷한 허상이라도 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마음 한 곳에 자리 잡은 그리움은 세르주의 속을 공허하게 갉아먹으며 동시에 부표처럼 떠다니려는 그의 정신을 붙들었다. 상념이 깊어지면 잠시 생각을 멈춰보라는 조언을 받았던 것이 언제라고 세르주는 한참을 묵묵히 앉아있었다. 초의 길이가 손가락 한 마디 길이 정도 가량 줄어들었다는 것을 깨닫고서 다급히 마이크를 돌아보니 마이크는 몸을 웅크린 채 어깨에 걸친 망토를 담요처럼 두르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먼저 먹어도 되었는데 아무래도 염치가 없다고 생각한 건지 포크는 제자리 그대로였다. 음식을 앞에 두고 고문하는 것도 아니고. 뒤늦게 자신의 행동이 비이상적인 것에 가까웠다는 걸 인지했을 때 마이크에게 말을 걸어보려고 했지만 마이크는 그냥 저를 이해한다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제가 지금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서. 세르주는 눈시울이 붉어지려는 걸 애써 부인하듯 부자연스럽게 웃었다.

 

 

더 식기 전에 빨리 먹어요. 파티하는 기분을 내자고 한 건 아저씨였잖아요.”

 

 

마이크는 그 때가 되어서 초를 향해 입김을 불었다. 불빛이 꺼지자 방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세르주는 그 때 제 눈물을 훔쳤다. 다행스럽게도 마이크가 바로 전등을 킨 게 아니라 형편없는 제 모습까지 보여주지는 않아도 되었다. 마이크와 어떤 말을 주고 받았는지, 케이크가 어떤 맛이었는지 이상하게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가로수의 나뭇잎들이 색을 바꾸며 물들었다 떨어지고 나뭇가지만 남아 앙상해지면서 계절이 차례로 지나갔고 정신을 차려보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세상은 즐거운 일들로 가득한 것처럼 거리는 떠들썩했고 작은 전구들과 큰 조명물이 반짝이면서 화려함을 자랑했다. 지나갈 때면 캐롤이 사방으로부터 들렸다. 세르주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마이크를 데리고 같이 교회에 들렸고 기도를 올렸다.

 

신이 있다면 마크가 돌아올 수 있도록 해주세요.

 

뭐라도 붙들고 믿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은 개인의 불행 같은 것에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달력의 연도가 바뀌고 겨울의 끝을 향하던 2월의 어느 날, 핸드폰이 울렸다. 이반으로부터의 전화였다.

 

 

- 세르주. 이제 장례식치러야겠지?

 

 

소유격이 생략되어 있었지만 누구를 뜻하는 건지는 암묵적으로 알았다. 세르주는 잠긴 목소리를 끌어내기 위해 뜸을 들였다.

 

 

- 그래야겠지.

- 폴라의 묘비 옆에다가 만들어주자.

 

 

평소와 다르게 간결한 대화를 나눴다. 전화를 끊고서 세르주는 달력을 보다가 먹먹해져 눈을 감았다. 시간이 어느덧 이렇게 흘러 있었다.

 

 

 

 

 

마크. 그 차를 타면 안 돼.

마크. 거기로 가면 안 돼.

마크.

마크!

 

 

눈을 떴을 때 세르주는 제가 모르는 공간에 서있었다. 10미터 정도 앞은 낭떠러지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자기와 1미터 정도 거리에 서있던 사람은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던, 그토록 그리워하던 사람이었다. 반가워할 틈새도 없이 마크는 자신을 보지 못한 것처럼 무심하게 저에게서 등을 돌리더니 낭떠러지가 있을 곳을 보았다. 시선이 저 먼 곳을 향하는 순간 느낌이 쌔했다. 마크! 이름을 불렀지만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앞의 형상은 갑자기 앞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마크!!!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다리를 움직이며 손을 뻗었다. 달리기라면 그보다 더 잘 뛸 자신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간격이 줄어들지 않았다.

 

 

기다려! 멈춰, 마크! 그 앞은...!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몇 걸음 뛰자 발이 닿을 수 있는 지면이 없었다. 순간 앞서가던 형상이 바닥을 잃고 아래로 꺼지려는 것을, 세르주는 제 팔을 있는 힘껏 뻗어서 그 손을 잡았다. 아래로 무게가 확 쏠리면서 세르주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팔이 휘청였다. 무게중심이 이동하며 커다란 구멍 사이로 끌려가기에 세르주는 마크를 붙잡지 않은 손으로 땅을 더듬으며 손톱을 박았다. 매끈한 지면에 손이 미끄러지며 몸이 벼랑과 가까운 곳으로 점점 흘러내렸다.

 

 

세르주!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초조한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이거 놔! 안 그러면 너도...

 

 

악착같이 손톱으로 흙에 자국을 남기다 손에 걸리는 끄트머리의 땅을, 모난 바위가 박혀있기에 잡고 무게를 버텼다. 바위를 쥐지 않는 손에서는 묵중한 무게가 느껴졌다. 제 목숨이 위험하다는 공포보다 손에 붙잡은 생명이 사라질까 두려웠다.

 

 

, ... 잡고 있어... 조금만버텨. 내가

 

 

정신이 아득했다. 이 손을 놓으면 마크가 사라진다. 절대로 놓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끌어올려야 했다. 어떻게든 버텨야만…

 

 

세르주이거 놔.

무슨, 소리를하는 거야.

너까지 죽고 싶어?

살 거야. 우리 둘 다!

... 세르주

 

 

표정은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목소리만이 귓가에 들렸다. 꽉 잡아, 마크. 내가 올려줄게. 바들바들 떨리는 몸의 떨림을 견디며 거대한 중력을 거스르며 이를 악물고 버티려는데,

 

 

괜찮아. 세르주.

 

 

평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음성에 저도 모르게 아래를 쳐다봤다. 시선이 닿았다.

 

 

이제... 그만 나를 놓아.

 

 

저를 보던 형상이 가냘프게 웃더니 잡고있던 제 손을 놓았다. 저를 붙들고있던 무게가 사라지면서 형상이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멀어져갔다.

 

 

 

 

 

...!”

 

 

그리고 악몽에서 깨어났다. 정신없이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뛰고 있었다. 순간 저도 모르게 제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손이 떨고있었다. 안정이 되고 나서부터는 한동안 꾸지 않았던 꿈이었다.

 

 

괜찮아요?”

 

 

목소리에 천천히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침대 옆에 마이크가 서있었다. 방금 전까지 마주하던 친구의 모습과 달리 제가 본 적 없는 시간대의 아이가 그 곳에 서있었다. 걱정이 담긴 검은 눈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리가 들려서 왔어요.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와본 건데

 

 

세르주는 어린 마크를 보면서 생각했다. 신이 있다면 왜 마크를 구하지 않았는지. 왜 이 세상으로부터 마크라는 존재를 지우고 마크의 흔적만을 남기고 갔는지.

 

 

그만 울어요. 아저씨.”

 

 

마이크는 작은 팔로 세르주를 끌어안았다. 꿈과 다르게 온기가 생생했다. 세르주는 그 작은 품에 한참을 안겨있었다. 뜨거운 물기가 가시기까지는 조금의 시간이 걸렸고 마이크는 말없이 그저 세르주를 안고 있었다.

 

 

 

 

 

장례식은 간소하게 치뤄졌다. 시신이 없으니 관을 짜는 것도, 발인을 할 수도 없어 그 모든 과정은 생략됐다. 1년 전에 먼저 세워진 그의 아내, 폴라의 묘비 옆에 마크의 묘비만 세워 만들어뒀다. 마크의 것이라고는 이 자리에 시신도 화장한 유골함도 그 어떤 것도 없는데 영정사진 속에 갇힌 친구의 모습을 보고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니 갑갑했다. 이런 날이 올 수도 있을 거란 사실은 알고 있었으면서. 알고 있는 것과 각오는 다른 문제였고 이렇게 현실로 마주하기 전까지는 실감할 수 없었다. 아니,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향을 피워 인사를 하고, 합장을 하는 동안에도 그 어떤 것도 현실로 닿지 않았다. 이 모든 과정이 연극처럼 펼쳐졌다. 유리된 꿈 속의 세계 같았다. 하얀 국화꽃도. 그 모든 게 어울리지 않았다.

 

마이크는 폴라의 묘비 앞에 섰다. 1년 전 장례를 치를 때 마이크는 사경을 헤매면서 병원에 있느라 여기에 와본 적은 처음이었다. 얄궂은 일이었다. 마이크의 눈은 축축하게 젖어있었고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작은 흐느낌과 함께 어깨가 들썩였다. 눈물이 맺혀 떨어지고 슬픔이 고스란히 드러난 모습을 통해 처음으로 아이의 본 모습을 그대로 엿본 것만 같았다.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작게 중얼거리는 말이었지만 옆에 서있던 세르주는 그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왜 마이크가 자신의 어머니도 아닌 그녀에게 죄책감을 갖는지 알 수 없었지만 마크의 장례식을 치르느라 세르주도 자세히 신경쓸 수 없었다. 마이크는 한참을 폴라의 묘비 앞에서 머물렀고 가까스로 감정을 추슬렀는지 자리를 옮겼다. 마크의 묘비 앞에 서고서 어떤 반응일까 싶었는데 뜻밖에도 마이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마크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가만히 서있었다. 까만 눈동자가 먹먹했다.

 

 

안녕.”

 

 

애매한 얼굴로 작별인사를 건넨 게 전부였다.

 

 

 

 

 

세르주와 마이크가 같이 지낸 1년 동안 마이크는 자신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세르주가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마이크가 제 부모에 대해 말을 꺼냈던 것이 다름 아닌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기 전이었다.

 

 

아저씨. 아저씨는 믿기 어렵겠지만아빠라고 해야 하나. 저에게 있어서 좋은 사람은 아니었어요. 친한 친구를 나쁘게 말해서 죄송하지만요.”

 

 

세르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이크의 입에서 나오는 마크의 평판은 결코 좋을 수 없을 거라는 것을. 그 때문에 지금껏 묻지 않았던 것도. 뭐라고 할 수 있는 말이 없어 세르주는 침묵을 택했다.

 

 

아저씨가 저를 곁에 두고 있는 것도 다 아빠의 아들이라서 그런 거 알아요. 그래서 이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어요.”

“......”

실망하셨어요?”

“... 글쎄. 잘 모르겠구나.”

 

 

사실이었다. 이 모든 것을 아직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그깟 정보가 피부로 닿을 리 없었다. 그저 한 것 없이 피곤했다. 세르주는 뻑뻑한 눈두덩을 꾹꾹 눌렀다. 그러자 뭘 착각한 건지 마이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아저씨.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아빠가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 아저씨보다 아마도... 아빠랑 같이 있던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그 정도는 알아요.”

“......”

 

 

세르주는 얼굴에서 손을 뗐다. 내가 슬퍼해? 난 오늘 울지도 않았는데? 뭘 보고 슬퍼한다는 거야? 세르주가 알 수 없단 표정으로 마이크를 보고 있자 마이크는 잠깐 머뭇거렸다.

 

 

이제 그만... 보내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악몽이 저에게 말을 건네왔다.

 

괜찮아. 세르주. 이제, 그만 나를 놓아.

 

꿈과 겹쳐지자 화가 치밀었다. 세르주는 눈을 크게 뜬 채로 마이크를 매섭게 노려봤다. 그 형상은 분노에 가까웠다.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닌 마크의 아들인 네가. 네가 어떻게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감정은 휘몰아치는 급류처럼 갑작스럽게 차올랐다. 크게 떠진 세르주의 눈에는 원망이, 눈물이 담겨있었다.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내는 마이크는 덤덤했다.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아요.”

 

 

어린 마크의 입으로 잔인한 말이 내뱉어졌다. 세르주는 끈이 풀린 인형처럼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포기해. 세르주. 나는 죽었어. 이제 잊고 보내줘.

 

 

환청이 귓가를 맴돌았다. 악몽 속 어딘가를 헤매는 것 같았다. 세르주는 환영을 붙들었다. 그 얼굴은 제가 그리던 얼굴이다가, 어린 마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현실의 시간대로 돌아온 순간에도 세르주는 허우적거렸다.

 

 

아니야. 마크. 마크. 이렇게... 네가 여기에...

 

 

세르주는 어린 마이크에게 손을 뻗다가 문득 깨달았다. 눈앞의 사람은 제 친구 마크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동시대를 걸었던 친구가 아닌, 어떻게 하더라도 자신과는 같은 옛기억을 공유할 수 없는 사람.

제가 사랑했던 사람이 아닌... 껍데기만 유사한 다른 타인이라는 것을.

 

 

마크가 죽었다.

그걸 몸소 자각하고 받아들인 시점에서 세르주의 시간은 다시 멈췄다.

아이를 방치하게 된 것도 장례식을 치른 날부터였다.

 

 

 

 

 

3233세르주, 1213마크. (33/13 장례식 치름)

(시간선 정리에 같이 업데이트 해둡니다)

 

더보기

 

1  2  3  4  6  8  7  5 (현재시점: 1  5  9(다음화) -시간 순차적으로 이어짐-)

위에 써둔 화수 순서는 원래 생각했던 순서였는데 그냥 저렇게 쓸 걸 그랬네요... 저렇게 보시면 시간대의 흐름이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우실 수도...(씁쓸) 5년이란 긴 시간을 다 서술할 건 아닌지라 불친절한 구성인 건 처음부터 생각을 했던 부분이긴 했지만 시간대까지 섞인 건 제 생각이 짧았던 게 맞습니다.(세르주톤)

 

 

32-12살 애들이 동거를 시작하면서 1년은 잘 지내다가, 실종에서 사망으로 처리가 되면서 마크의 장례식을 치르게 되고 그 이후에 마이크를 2년간 방치를 하게 되는... 과거 화수까지는 둘 중 그 누구도 옹호하지 않는 글을 쓰는 게 목표였답니다.(누가 옳다, 그르다로 편중되지 않도록) 상황의 안타까움과 별개로 개개인의 사정은 다 다른 것이고 고통도 다 각자의 몫이 서로에게 더 큰 법이니까요. 이 소설은 고증이 취약한 소설이니 참고 부탁드리며.

 

마크의 사망 이후로 어딘가 망가져버린 세르주와(자기 상태를 방치하면서 무뎌져버린 부분과 자기방어를 내세우며 회피하는) 큰 사고를 겪었지만 심리치료를 2년간(비교적 오래) 병행하면서 자기 상태를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마크... 까지가 과거입니다. 저는 현실 감각 있는 사람이 마크라고 생각하고, 다소 냉정한 대처를 하는 것도 마크라 생각하네요. 그 기반엔 여러 감정이 기저에 있지만 가장 큰 문제라면 세르주는 무의식적으로 어린 마크(마이크)를 제 친구인 마크라 생각하기도 하는 한편, 마크가 아닌 타인이라고도 분리해서 생각할 때도 있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가 갈피를 못 잡아서 생겨나는 문제라 생각합니다. 순간순간 마이크를 대하는 태도도 다르고. 장례식 이후(33-13)로 세르주는 마이크를 마크의 아들, 즉 타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현재 시점(35-15)입니다.

 

현재>미래(9편 이후)는 평화롭지 않은 전개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스펙타클하게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8편 같은 경우는 초안이 전부 잡혀 있었고(200624) 절반은 써둔 상태이긴 했어서... 과거편을 정리할 겸 수요조사를 하려고 2년 만에 백업했습니다.

이 뒤로 남은 편수는 예상하기로는 5~8화 사이 정도..? 편수가 있다보니 제가 9편부터는 이 이상 쓸 수 있을 지 확신이 좀 없어서... 수요 조사를 해보고 어느 정도 있으면 생각을 해보고 정비해보도록 할까 싶어서 백업했습니다. 2년 전에 쓰다 말아서 사실 읽으시는 분들 현재는 없을 줄 알았는데(중도 포기에 가까웠지요 사실상..) 최근에 어떻게 하다가 지인분들을 통해 보고 있으신 분들이 있단 걸 알음알음 전해듣게 되어...(정말 감사하고 죄송하기만...)

 

근데 22와 캐해는 안 맞으실 텐데 괜찮으실지... 여담이지만 제가 올해 22에서 튕겼어요.(연출과 캐해 변화 등으로 인해.. 페어가 돌아와도 이런 일이 발생하네요) 어차피 이 글은 18기반으로 쓰던 거라 18기반입니다.

 

수요 조사: https://naver.me/GHDmjcd1

 

참여해주시면 제가 이 글을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 도움이 됩니다.. 제 현생도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겠어서 확답은 못 드리겠지만 어느 정도 있으면 정말 생각 좀 해볼게요. 이런 불확실함 죄송합니다ㅜㅠ 후기로 천자 채운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