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안정. 오메가버스인데 관계하지 않음.
0.
김우진은 자기가 태어난 이 시대에 회의를 느꼈다. 자신을 억압하는 요소가 너무 많았다. 조국이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빼앗는 일본이며, 부르주아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가업을 이어 받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아버지며, 정해진 계급에 따라 집안을 맺어야 한다고 강요하던 고루한 조선의 사고방식. 신분 해방이 이루어진 지금 이 시대에서 계급은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형질을 가리켰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원하지도 않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릴 이유도 없었고 가장으로서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야 할 의무에 시달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김우진은 자신이 갖고 있던 고유 형질을 저주했다. 그것이 자신의 삶을 제 의지와 다른 길을 걷도록 조종해 자신을 허무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우진은 알파였다.
1.
일반적으로 알파는 오메가와 짝을 맺고 혼인을 하게 되어 있었다. 그 편이 사회의 체계를 흐트러트리지 않고 일상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는 사회적인 판단 아래 내려진 약속 같은 것이었다. 오메가는 보호를 받아야 했고 제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알파가 필요했다. 알파 역시 공격성이 강해질 때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메가가 필요했다. 김우진의 가문은 대대로 알파였고 김우진 역시 그 형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ㅡ 오메가를 보호해줘야 한다. 그리고 네가 그들 중에서 운명을 같이 할 짝을 찾으면 된다.
아버지가 늘 하던 말이었지만 김우진은 그런 세속적인 만남이니 여자에게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그런 것보다는 조국의 암울한 미래를 걱정하며 펜으로 무언가 써내려가는 걸 좋아했다. 그는 사랑을 하게 될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결혼에 대해 생각이 없었지만 그의 아버지와는 생각이 달랐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하루빨리 한 사람의 몫을 다하는 가장으로서 집안을 더욱 견고하게 다지기를 원했다. 그래서 김우진이 돈벌이도 되지 않는 글을 쓰겠다고 설치는 모습에 완강히 반대했다. 김우진이 무턱대고 저항할 수도 없었던 이유는 현실적인 문제로, 돈이었다. 생계도 이끌어나가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다면 그는 그가 희미하게 꿈꾸는 이상조차 가질 수 없었다. 절필(絶筆)은 글을 쓰는 작가로서 그가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죽었다 깨도 선택할 수 없었다.
김우진은 현실에 순응한 척 사업을 키우기 위한 공부를 하겠다는 그럴듯한 핑계거리를 대고 도쿄로 유학을 갔다. 일본은 조국을 점령한 파렴치한 나라였지만 사고만큼은 개방되어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으로 열려있는 나라였다. 사방에서는 조선과 다른 언어인 일본어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신문명을 보면서 어쩐지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김우진은 이국으로부터 느낀 자유를 자신처럼 갇혀 있다고 생각하는 조선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국내 순회공연으로 할 희곡을 적기로 마음먹었다. 그 편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2.
그를 처음 만나게 된 것도 그 때였다. 여느 때처럼 번안극을 위해 책을 보며 번역을 하고 있던 차였다. 일본어로 저에게 대화를 던진 남자는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느닷없이 제 방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키가 저만큼 크고 몸이 늘씬하게 빠진 사내였다. 그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내내 입가에 장난스런 미소를 띠우고 있었지만 저를 보는 눈만큼은 흡사 파충류의 눈동자와 닮은 것처럼 번뜩였다. 창가로부터 벚꽃 잎이 팔랑팔랑 봄바람과 같이 불어오고 있었는데도 유독 서늘하게만 느껴졌다. 우진은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내쫓으려 했지만 그는 자신의 글을 읽었다면서 ‘창의적인 사고, 창조적인 삶’를 운운했다.
“라이프 포스!(Life Force)!”
우진은 생명력을 이야기하며 저항해야 한다는 눈앞의 검은 사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신의 머릿속 생각을 그대로 빼내 입 밖으로 말하는 상대는 지금껏 없었으므로 우진은 자신과 뜻이 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전율했다. 외국에서 만나는 조선인. 그리고 진보적인 생각. 지금껏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사로잡힌 듯이 한참 그를 쳐다보다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무취. 어떠한 냄새도 나지 않는 걸 보니 그는 형질과 관계없는 일반인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저런 발언을 할 수 있는 걸까. 우진의 머릿속에 빠르게 생각이 스쳤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베타라면 어느 형질에도 속하지 않으니 알파와 오메가를 구분하지 못할 것이었다. 사내는 자기를 ‘한명운’이라고 소개했다. 시선을 빼앗긴 것마냥 우진은 들뜬 마음으로 그를 보았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번안극으로는 한계가 있지. 네가 직접 써.”
“나는 단 한 번도 번안극 외에 희곡을 써본 적이 없는데.”
“내가 도와줄게.”
그 안에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그 당시 우진은 몰랐다.
3.
그로부터 머지않아 김우진은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소심한 김우진과 달리 적극적이고 밝아 명량했으며ㅡ 알파였다.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의 장난에 놀아나는 것을 알면서도 둘은 처음 본 순간 운명을 느꼈다. 형질과는 전혀 관계없는 끌림이었다. 김우진은 자신이 알파라는 사실을 혐오하던 사람이었다.-그로 인해 마음에도 없는 오메가와 정략결혼을 했고 일본에서 애인을 만들었다- 김우진은 윤심덕을 만나고서 처음으로 글 이외의 것, 여자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그 둘의 만남을 주도했던 건 다름 아닌 한명운이었다.
4.
“우욱,”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현기증과 같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울렁증이 너무 심해 우진은 다른 한 손으로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휘청거리며 비척이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머리만 아프기만 한 게 아니라 속도 좋지 않은 것을 보니 확실히 주기에 들어선 모양이었다. 아침 입맛이 없을 때부터 짐작은 했었다. 날짜는 전혀 맞지 않았지만 증상은 그날과 같아서 약은 분명 먹었건만, 요즘 들어서는 약효가 전혀 먹히지 않았다. '전혀'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정확하게는 부작용이 너무 자주 동반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두통이나 구토 같은 종류의 현상들. 싸구려 약도 아닌데 왜 이렇게 약이 잘 받지 않는지 알 수가 없다 생각하면서도 우진은 떨리는 손으로 약통에 손을 가져갔다.
“커흑!”
갑작스러운 메슥거림과 쨍하게 울리는 머리로 인해 몸이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둔탁한 소리가 들리더니 손끝에 걸렸던 약병이 데굴데굴 굴러갔다. 우진은 손으로 바닥을 짚고 기다시피 기어 손에 닿는 쓰레기통을 붙잡고 속을 최대한 게워내려고 노력했다. 그 동안 멀쩡하게 억제제를 먹어왔는데 왜 약효가 먹히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에 대해 사실은 알고 있다. 원인은 윤심덕이다. 정확하게는 또 다른 알파. 알파끼리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것도 가끔 세력 견제가 일어날 때처럼 스파크가 튀는데, 윤심덕과는 애정행각을 벌이며 입술을 부대꼈다. 알파의 향이라고 서로를 전부 배척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주기’가 다가올 때 특히 심했다.
러트.
알파의 발정기가 일어날 때 우진은 제가 사랑하는 여자에게조차 다가갈 수 없었다. 이성을 잃은 채 그녀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강제로 취하는 건 김우진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약을 잘 받지 않은 건 김우진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윤심덕은 지금껏 지내왔던 것처럼-주기는 조금씩 영향을 받아 달라지기는 했지만- 약을 먹으면서 일상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부작용 같은 현상을 겪는 건 우진 혼자뿐이었다. 제 몸이 허약한 건지 예민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가 이런 고통이 없어서 김우진은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시야가 불투명한 막이 낀 것처럼 머리가 지끈거리는 이 순간까지도.
속을 게워내려고 입을 벌렸지만 오늘 하루 먹은 것이 없었기에 정작 나오는 건 타액밖에 없었다. 울렁증이 조금 진정되고 나니 불분명하게 흐렸던 시야에 조금씩 초점이 돌아왔다. 약통을 찾으려 천천히 두리번거리는데 방구석으로 굴러가 있었다. 효과가 먹히든 아니든 약은 먹어야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없을 텐데. 손으로부터 힘이 빠졌다. 쓰레기통이 팔에 치이며 쓰러지고 몸 또한 기울며 쓰러졌다. 머리가 지근거리며 열을 앓는 것을 넘어 알파로 발현이 되었던 때처럼 몸이 뜨거웠다. 몸을 가눌 수도 없을 뿐더러 아예 통제가 되지 않았다. 부작용만 동반된 줄 알았더니 정말로 이번엔 아예 약효가 안 먹힌 모양이었다. 이러면 위험한데. 갈 곳을 잃은 우진의 손이 애꿎은 바닥을 긁었다. 제발, 누구든 좋으니 살려줘. 심장이 귀를 좀먹을 것처럼 쿵쾅쿵쾅 지진이 난 것처럼 시끄럽게 울렸다. 몸으로부터 열은 끓는데 식은땀만이 나고 오한이 들었다.
제기랄, 조선이었으면 오메가인 아내와 몸 관계를 맺으면 해결될 일이건만... 아니, 하다못해 후미코만 만나러 갈 수 있더라도...
그 생각을 하면서도 김우진은 이성적인 사고 판단을 하지 못하는 제 자신과 알파로 각인된 제 몸뚱이를 증오했다.
5.
똑똑,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문기척이 났다.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방문이 덜컥 열렸다.
“우진아, 밥 먹고 나서 희곡에 대해서 이야기를…”
이름을 부르려던 소리가 멎었다. 아, 이런. 우진은 바닥에 나뒹굴러진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모처럼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났다보니 그에게는 자신을 알파라고 밝히지 않았었다. 이런 꼴사나운 모습. 형편없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건 수치였지만 김우진이 자질구레한 생각을 따져가며 체면을 차리기에는 남아있는 이성 자체가 없었다. 지금 나에게 다가오지 마. 우진이 가쁜 숨을 내뱉으며 가까스로 생각했지만 사고와 달리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질 않았다. 사내가 방 끝으로 걸어가더니 상체를 굽혀 눕혀진 약통을 집었다. 은색의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약통을 열고 그는 제 손바닥에 알약을 쏟아냈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약이었다.
“억제제가 벌써 안 먹힌다는 건 생각 외인데.”
명운이 한 알의 알약을 손바닥에 남겨두고 나머지는 다시 약통에 넣어 닫았다. 일반인인 네가 어떻게 내가 형질의 사람인지 알고 있어? 벌써는 무슨 말이야. 우진이 불분명한 사고로 흐리게 생각하는데 명운이 다가왔다. 책상 옆의 선반에 구비되어 있던 물주전자에서 컵에 물을 따르고는 그가 허리를 굽히며 약과 같이 물이 담긴 컵을 건넸다. 우진은 떨리는 손을 뻗어 힘없이 받아들었다. 받아들이려고 했다. 우진은 약과 물 컵을 잡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그는 한명운의 바지자락을 붙잡았다.
“하아, 하아, 으…”
온 몸이 뜨거웠다. 해소하고 싶은 충동이 몸 안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우진은 명운의 다리 한쪽을 붙잡고 제 얼굴을 비볐다. 명운이는 일반인인데. 처음으로 마음에 맞는 친구인데. 우진이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몸이 좀처럼 제어되지 않았다. 명운은 저를 붙잡은 채 헉헉거리는 우진을 한참 내려다보다 상태를 살피기 위해 몸을 굽혔다. 우진이 잡고 있지 않은 한 쪽 다리로 무릎을 굽혀 앉자 우진과 거리가 가까워졌다. 우진은 명운의 팔을 붙잡았다. 손의 악력은 어디서 나온 건지, 명운이 입고 있던 팔 부분에 주름이 나며 잔뜩 구겨졌다. 움켜쥐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아플 법도 했지만 명운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명운이 우진을 봤을 때 눈은 열기로 흐리게 번져있었다. 제발 어떻게 좀 해줘. 이성이 거의 함락돼 옅은 의식이 떠돌아다니는 그 모습은 꼭 신에게 호소하는 것처럼 보였다. 명운은 나약한 인간의 본성이 드러난 걸 마주했다.
명운은 손에 든 컵을 제 입으로 기울였다. 물을 머금고서 억제제를 입에 물곤 명운은 우진의 뒷목을 잡아 우진의 고개를 젖히고 제 입술을 포갰다. 맞닿은 입술은 서늘했지만 그 때문에 우진은 그 온도가 기분 좋다고 생각했다. 코가 닿고 숨결이 닿고 있었지만 우진은 제 앞의 상대가 누구인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입을 벌렸다. 우진의 입 안으로 소량의 물과 녹아든 알약이 흘러들어왔다. 가루로 풀어져 섞인 물에서는 쓴 맛이 났다. 목의 각도 때문에 사례가 들릴 것 같았는지 우진이 제 앞의 상대를 밀쳐냈다. 명운은 순순히 떨어졌지만 우진이 약을 삼키기까지 젖혀진 뒤통수는 붙잡고 있었다. 우진의 목젖이 움직였다. 약과 물을 뱉지 않고 삼킨 걸 확인하고서 명운이 우진을 붙잡았던 머리로부터 손을 놓았다. 입 안에 약의 쓴 맛이 남았는지 명운이 헛기침을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참… 어리광쟁이도 아니고. 너 같은 부르주아라면 얼마든지 살 수 있잖아.”
명운은 여전히 제 팔을 놓고 있지 않은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우진에게 혀를 찼다. 우진은 그가 말하는 말 속에 숨겨진 목적어가 칭하는 대상이 ‘오메가’라는 걸 알아듣고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윤심덕을 놓기는 싫고?”
우진이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성은 거의 없었지만 그 이름에 반응했다.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의사 표시였다.
몇 분의 시간이 지나자 우진의 숨소리가 비교적 고르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약의 효과가 먹히는 모양이었다. 허나 우진은 사내의 옷자락을 놓지 않았다. 향 때문이었다. 평소에는 무취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흔적 하나 남기지 않는 한명운이었지만 지금은 그에게서 어디선가 맡아본 것 같은 향이 풍겼다. 양복을 세제 유연제로 세탁이라도 한 것일까. 그가 곤란해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놓을 수가 없었다는 게 정확했다. 왜인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 우진이 놓을 때까지 명운은 기다리려 했던 것 같았지만 상황이 그렇지 않은 걸 깨닫고서 명운이 허리를 굽혀 앉았다.
“우진아. 좀 자는 편이 낫겠다.”
그리고 우진은 제 목 뒤로 무언가 강타당한 느낌을 받았다. 몸에 힘이 빠지는가 싶더니 우진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6.
“이게 무슨 꼴이야.”
심덕이 인상을 쓰며 명운을 쳐다봤다. 정확하게는 짐짝처럼 어깨로 들쳐 맨 김우진을 거실에 놓인 소파로 옮기고 있던 한명운에게 한 말이었다.
“끄응… 보시다시피.”
명운은 숨이 차는지 소파에 우진을 내려놓고서 호흡을 정돈했다. 평소 좀처럼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 명운이었건만 지금은 말끔했던 옷이 여기저기 구겨져 있었다. 누군가에게 거세게 붙잡힌 흔적처럼 만들어진 옷 주름과 이마에 땀이 맺혀있는 것만 봐도 확실히 드문 일이었지만 심덕은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누군지 알았다. 심덕이 소파 곁으로 가 몸을 숙이곤 잠든 우진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식은땀이 맺힌 것을 보고 그녀는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굴선을 따라 땀을 닦았다. 조심스런 손짓과 눈에서 걱정이 묻어났다.
“약이 또 안 먹혔나보네.”
“그래도 네가 있어도 아무 반응 없는 거 보면 잠잠해진 것 같은데.”
호흡이 불안정하지 않은 걸 보니 약효가 정상적으로 돌고 있는 건 맞았다. 단 한 번도 말한 적 없었지만 명운은 우진과 심덕이 둘 다 알파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눈치였다. 일반인은 형질을 알아볼 수 없을 텐데. 심덕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명운이, 네가 흐트러진 건 처음 보는데.”
“기절한 성인 남자가 얼마나 무거운 지 알아?”
명운의 목소리가 심드렁했다. 흐트러진 그 모습이 신선하면서도 우스꽝스러워 심덕은 푸스스 웃었다.
“거야 모르지. 내가 안긴 적은 있지만.”
“뭐야. 우리 심덕이, 질투하는 거야? 너도 안아줄까?”
“됐어. 숨도 헐떡거리는데 좀 가서 쉬지 그래?”
명운은 심덕의 말에 나지막하게 웃었다. 조금 지친 것처럼 보여 얼른 들어가서 쉬라고 말을 덧붙이려다 심덕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익숙한 향은 아니었지만 명운에게서 어딘지 친숙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었다.
“오늘 향수라도 뿌렸어?”
명운이 심덕을 빤히 쳐다보다 이내 가는 눈웃음을 흘렸다. 그가 목소리를 확 낮췄다.
“왜? 마음에 들어?”
“아니. 너와는 좀 안 어울리는 향인 것 같아서. 너무 산뜻한데.”
“얼굴이 음흉하게 생겨서 이런 건 안 어울린다는 뜻인가? 나라도 상처 받아.”
명운이 태연하게 웃고 있어 진심인지 장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쭈? 생각보다 뒤끝이 있네?” 심덕이 되받아치면서 "그 때 그건 내가 사과했잖아." 미안한 얼굴을 했다. 명운이 표정을 풀며 어깨를 으쓱였다.
“농담이야. 뭐, 우리 심덕이 나보다 미적 센스는 좋으니까. 그렇다면 좀 무거운 향으로 바꿔볼까.”
“여자라도 생겼어? 갑자기 향에 신경을 쓰고. 뭐… 나는 마음에 들긴 한데.”
말과 다르게 심덕의 얼굴은 애매했다. 싫어할 수 없는 향이기는 했지만 확실히 그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명운은 벽걸이에 걸린 제 중절모를 집어 그녀에게서 몸을 돌렸다. 명운은 모자를 쓰고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너에게는 김우진이 있잖아. 뒤를 부탁해.”
“그래. 수고했어. 잘 가.”
“안녕. 나중에 봐.”
천연덕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명운이 문을 닫았다.
7.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건물을 빠져나간 명운은 담벼락에 기다란 몸을 기댔다. 제 자켓 안주머니에서 은색의 지포라이터와 담뱃갑을 꺼내는 손놀림은 익숙했지만 미세하게 손이 떨고 있었다. 담배를 하나 입에 물고서 라이터를 가져대자 불이 붙으며 반짝였다. 깊게 한 모금 삼키고서 명운은 진정된 것처럼 하늘을 쳐다보며 담배 연기를 길게 뱉었다. 체력을 이런 식으로 소모해본 것이 얼마 만이었는지 그 본인조차도 신기했지만 정작 당사자는 별 생각이 없었다.
“들키는 것도 시간문제군.”
그의 표정은 언제나 그런 것처럼 평온했다.
고생하는 우진을 소파로 옮겨주는 명운이 보고 싶어서 쓰기 시작한.
우진 알파, 심덕 알파, 명운 (열성)오메가. 딱히 관계는 하지 않기 때문에...
원래 사내우진을 쓰려고 썼는데 언젠가부터 내 취향의 어딘가 빗나가기 시작하면서... 명운이 원래 베타 설정이었는데 뭘 끼얹으려고 그러는지 나는 내 자신을 잘 모르겠다.. 관계하지 않으니까 딱히 상관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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