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 마신 작가님에게 휘둘리는 와이트. 첫 시작은 애매한 합의처럼 보일 수도...
※ 4연ver (5연 X) 23때 완성하지 못했더니 이제는 딥디에만 남은... 적폐 같네요
※ 수갑 O.(후반 X) 유료발행 20,376자 (후기 제외)
흰 손이 셔츠 위를 더듬으며 상반신을 느릿하게 훑었다. 목 주변을 배회하던 손가락이 넥타이의 매듭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더니 아래로 끌어내리자 고리가 느슨해지면서 형체를 잃고 쉽게 풀어진다. 이게 무슨 상황인 거지? 와이트는 왼손을 당겨보지만 책상다리에 채워진 수갑이 부딪치며 잘그락거리는 소리만 났다. 작가...님? 침음하듯 작은 음성으로 입을 떼자 자신을 더듬고 있는 손이 가슴으로 올라왔다. 베스트의 단추도 풀어져 와이셔츠 천 한 겹만을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그레이의 손길이 기묘해 와이트는 희미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손목에 수갑이 채워져 제약을 당한 건 왼쪽 하나뿐이었으니 마음만 먹는다면 저항의 의사를 표현하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제 위로 올라온 술주정뱅이를 치한 취급하며 때리는 방법도 있었지만 와이트는 그 선택지는 보류하고 최후의 순간으로 미뤘다.
"숙취 깨고 나서 후회하실 거예요."
와이트는 등을 져 어둠에 잠긴 그레이를 올려다본다. 평소와 같은 얼굴인 것 같지만 눈은 몽롱하고 볼은 평소보다 붉어 알싸한 냄새를 풍기는 그를. 가만히 제 위의 향상을 응시하자 그레이의 입가가 움직였다. 웃는 것 같은 얼굴은 평소와 비슷한 것도 같은데 나른하게 번진 눈빛은 몽롱한 것처럼 잠겨있다. 와이트의 말은 무시하고 손이 상반신을 천천히 쓸더니 허리의 윤곽을 확인하듯 만졌다.
"의외로 너… 몸이 탄탄하네."
"술 취한 아저씨 같은 소리를 하시네요."
"내가?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는데? 아저씨는... 맞지. 이건 부인 못하겠네."
"보통 변명을 할 거면 반대지 않... 아, 작가, 님! 손 좀, 아 진짜, 그만 만져요!"
복부며 가슴이며 위팔이며 여기저기를 만지작거리는 행동이 점점 과감해져 와이트는 몸을 비틀었다. 가, 간지러워요! 항복, 항복...! 스치는 손짓에 소스라치게 놀란 상반신이 둥글게 말리며 떠는데 뭐가 즐거운지 그레이는 등뼈를 확인하듯 천천히 아래로 내려와 허리선을 훑었다. 움찔거리는 상대의 반응을 재며 손을 크게 펴더니 아까와 비슷한 궤도를 따라 상반신을 느긋하게 손바닥으로 쓸어 행적을 그렸다. 작까니임?! 경악과 함께 와이트의 억양이 튀어 올랐다. 간지러운 감각보다 기묘한 감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데 저를 괴롭히는 손은 멈추질 않아 와이트는 방관하는 걸 관두고 묶이지 않은 오른손으로 그레이의 손을 붙들었다. 다급하게 저지한 와이트의 얼굴엔 황당한 기색이 가득했다.
"장난이 뭐 이래요?!"
"예전에 운동 뭐 했었어?"
"운동이요? 어... 조깅? 체력은 있어야 하니까..."
작게 헐떡이면서도 충실한 대답을 하자 그레이는 고개를 작게 끄덕거리며 붙잡히지 않은 손으로 와이트의 안경을 벗겼다. 그래서 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있어도 쉽게 지치지 않았구나? 제 안경을 본인의 소지품인 양 책상 위에 올려두는 일련의 행동이 자연스러워 와이트는 뭐라 반박할 생각도 못 하고 갑자기 달라진 시야에 적응하기 위해 눈을 한참 깜박거렸다. 글자를 오래 보다 보면 눈이 금방 피로해져 맞췄다 보니 안경이 사라져도 선명도가 조금 옅어지고 멀리 있는 것이 조금 흐릿하게 보이는 정도라 사실 큰 불편함은 없다. 얼마나 마신 건지 작가님이 지금 하고자 하는 행동을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네. 술병이라도 있으면 범인 검거라도 했겠지만 그레이는 용의주도하게도 늘 불투명한 힙플라스크에 옮겨 마셨고 이 방에 있더라도 책상 서랍 안쪽에 있을 거라 와이트는 '분명 안은 텅 비었겠지. 이 술주정뱅이를 어떻게 해야 한담...?'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더니 중얼거렸다.
"몸은 저보다 작가님 체격이 더 좋잖… 아? 혹시 이걸 노리고 지금 이러는 거에요?"
평소에도 듣고 싶은 말이 있을 때 그레이는 에둘러 말하는 편이었고 와이트는 드디어 이 알 수 없는 행동에 대한 답을 찾았단 듯이 타당한 출력값을 내놨다. 맞죠? 작가님, 지금 이 말이 듣고 싶었던 거죠? 입가에 미소를 환히 띄우며 확신에 찬 와이트의 눈이 빛났다.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려도 그렇고 외모에 관심을 두는 편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최근에 '와이트. 예전보다는 그래도 여러모로 내가 나아졌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그래서 네가 보기에 요즘 나는 어때?' 라고 물어봤던 것을 떠올려보면 제 추측이 틀리진 않은 것 같았다. 그때 저는 뭐라고 대답했더라... 생각할 것도 없이 '무슨 소리에요? 작가님은 늘 멋지죠! 마감만 잘 맞춰주시면 더할 나위 없고요.' 같은 소리를 웃으며 했던 거 같은데...
상념을 방해하듯 저에게 잡혀있던 흰 손이 제 가슴 위에 얹어진다. 정말 뭘 하려고 이러시는... 생각이 마침표를 찍기 전에 손끝이 가슴판을 훑다 돌기를 건드렸다. 작...가님? 떨떠름한 목소리를 들었음에도 손가락이 유륜 주위를 배회했고 잡혀있지 않은 반대쪽 손이 와이트의 복근을 느긋하게 훑었다. 천 위로 타인의 손길에 덧입혀지는 감각이 낯설었다. 대놓고 노골적으로 구는데 이 손길이 의미하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눈치가 없던 것도 아니라 와이트는 이 상황으로부터 도피하던 생각을 접곤 그레이의 손을 잡고 있던 제 손에 힘을 줬다. 어디까지나 저지하려는 의도였다.
"자, 작가님? 저 와이트, 인데요?"
억양은 이제 당황함을 숨기지 못해 고조가 제멋대로였다. 작가의 사생활은 마감에 지장을 주지 않는 이상 제가 참견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 영역에 자신이 포함되면 말이 달라진다. 작가님의 생활 반경 안에 제 존재가 자리 잡는 건 좋지만 이런 의미를 뜻하는 건 아니었는데. 작가님, 저는 여자가 아닌데요? 이 말을 구태여 입에 담지 않았지만 입 밖으로 꺼낸다 하더라도 확인 사살을 하듯 돌아올 말은 예상이 갔다. 지금처럼 저를 내려다보는 눈에 담긴 시선을 본다면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누그러진 눈빛이 평상시의 그레이라면 지금은 열기가 일렁거린다. 저에게만 온전히 쏟아지는 눈빛에는 애틋함이 담겨 마주하고 있자니 어지럽다.
"경험은 아직이야?"
"절 놀리는 거라면... 충분히 답이 된 거 같은데요..."
"그래? 이렇게 귀여운데. 아쉽네."
남자가 귀여워서 뭐에 써요? 아니, 그보다 귀엽...다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이 쓰렸다. 밤을 새우더라도 항상 쓰리피스로 정장을 반듯하게 입고 오고, 안경은 디폴트로 얕잡히지 않기 위해 머리 세팅까지 하고 오는데 지금 대우는 너무한 거 아닌지? 나이가 많은 연장자가 저보다 어린 사람을 예뻐할 수야 있지만 문자 그대로의 의미인지 아니면 비유로부터 파생된 감정의 의미인지도 알 수 없어졌다. 세상과 동떨어져서 지낸 시간이 긴 만큼 기준점이 일반 사람들과 다른 걸지도... 습관처럼 도피성이 앞서 생각을 이어 나갔지만 한 쪽 수갑이 덜그락거리는 소리에 도망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했다. 지금 저를 여기 붙들어놓은 게 원망스러워 와이트는 손목에 걸린 수갑을 노려보며 왼손을 당겨보지만 책상다리에 부딪친 수갑과 연결된 체인 소리만이 차르륵 울려 고정된 체인의 길이만 인식했다.
'모조품이면서 쓸데없이 견고하네...!'
수갑 열쇠는 재킷 주머니 안에 있는데 벽 옷걸이에 걸어두고 들어와 여기선 손을 뻗어봐야 닿지 않는다. 책상을 들어 책상다리에 걸린 수갑 고리를 빼내는 방법도 생각해봤지만 책상 위엔 타자기와 원고 종이들이 흩어져있어 바로 생각을 접었다. 타자기가 망가지면 그거야말로 가장 최악의 사태가... 독촉하는 편집장의 목소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러운데 셔츠 위를 만지는 그레이의 손과 닿은 면적에서 전해지는 체온이 낯설게 다가온다. 직업병이 문제였을까? 수갑은 어디까지나 작품 속의 장치지, 내 행동 범위를 제약하려는 게 아니었는데 어쩌다...
사건의 발단은 사실관계를 확인해보기 위한 물리적인 검증 단계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수갑 어때요? 탈옥범이라면 수갑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요. 자기를 덮치는 블랙을 제압하려 시도하지만 블랙이 한 수 앞서," "갖고 있는 수갑을 뺏어서 역으로 제압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텐데? 물리적인 범행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도 감이 안 오고." "음. 아무래도 비효율적이죠? 이건 없던 걸로 해요." "수갑이라... 일상생활에선 접하기 어렵다 보니 생각을 안 해봐서 그런가? 궁금하긴 하네." "소설에는 안 쓰실 거죠?" "지금이야 그렇지만 어떻게 단언해? 소재가 고갈나는 거야 늘 있는 일인데." 흐지부지 흩어진 이야기는 흘러갈 수도 있었으나 다름 아닌 대화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와이트였다. "이거 진짜야?" 수갑을 만지작거리며 묻는 그레이에게 와이트는 상식적인 대답을 읊었다. "경찰이 아닌데 제가 진짜를 어떻게 구해요? 큰일 날 소리를 하시네." 그레이는 쉽게 수긍했다.
ㅡ 그래도 나름 비슷한 걸로 구해왔어요. 물리적인 작업 시간과 움직임의 제약을 확인하는 용도론 괜찮을 거에요.
둘이 몇 가지 실험을 거치는 과정에서 와이트의 왼쪽 손목에 한 쪽의 수갑이 채워졌고 다른 한 쪽 고리는 책상다리에 걸리게 되었다. 다만 조금 특이한 사항이 있었는데 목표물을 제압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한 것치고는 블랙 역을 맡은 그레이의 움직임이 느긋했고, 와이트의 손목에 수갑을 채울 때 그레이의 손이 몇 번 헛돌아 시간을 지체했단 점이었다. 수갑으로 봉쇄하는 작업을 시연하면서 몸이 닿을 듯 가까워졌을 때 스치듯 지나간 숨으로부터 그레이로부터 알코올 향이 느껴져 와이트는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생각을 정비했다.
'조금 취하셨나 보네. 범행 시간은 20초 정도 줄여도 될 거 같고. 당장 글에 반영할 소재는 아니니 나중에 다시 검증할까?'
그렇게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던 게 실책이었다. 몽롱한 기색이라던가 나른해 보이는 움직임이라던가, 더워 보이니 편히 있으라며 느닷없이 제 베스트 단추를 직접 풀어준 것도 그렇고. 눈치챌 수 있는 부분은 중간중간 있었는데 왜 안일하게 넘겼을까. 자기가 방문한 시점에 그레이는 평소 주량을 훨씬 넘긴 상태였건만...
와이트는 잡고 있던 그레이의 손을 제 상반신으로부터 떼어내기 위해 강제로 들어내려 하지만 상대가 완강히 버티는 탓에 떨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기회를 노려보지만 강경한 힘이 저와는 반대 방향으로 작용했다. 젠장, 술에 취한 주정뱅이면서 힘은 왜 이렇게 센 건데...!
"작가님, 이쯤에서, 장난은 그, 만 하고... 자는 게, 윽... 어때요? 원고, 쓸 마음... 없잖, 아요..."
붙잡은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간다. 어떻게든 떼어내려 안간힘을 쓰는 와이트를 내려다보며 그레이는 흐으음, 눈을 내리깔더니 묘한 웃음을 흘렸다. 낑낑거리며 힘겨루기를 하듯 필사적인 와이트의 모습이 가소롭게 느껴진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레이는 와이트의 의도대로 그에게 잡힌 손 하나를 쉽게 내어줬다. 몸을 만지는 움직임이 가까스로 멎어 와이트는 숨을 돌렸다. 이제 끝났나 싶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자는 건 좋지. 근데... 이래서 잘 수 있겠어?"
(이후는 아래 페이지에서 봐주세요. - 수위 유료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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