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http://flowerofdawn.tistory.com/31 (소설)

2. https://qustion.postype.com/post/2840751 (만화)(뒤를 이어)




세르주의 집은 넓은 것 치고는 간소하다. 거두절미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 탓인지 모든 것이 생략된 하얀색 벽지와 정중앙에 걸린 흰 그림 장식이 전부다. 비싸 보이는 원목들로 이루어진 세간이라 한들 많지는 않다. 혼자 사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않나? 하기에 침대는 더블침대였다. 아마도 아내와 같이 지냈을 때 쓰던. 혼자서 잠들기에는 지나치게 넓은.

의식하지 않고 잠을 잔다는 건 어려웠다. 뒤척이면 기척이 느껴져서 불편할 지도 모르는데. 심장소리가 들리는 건 아닐까. 들린다면 잘 수 없을 텐데. 왜 옆에서 자라고 말을 꺼냈는지 금세 후회가 들었다. 그렇지만 나로 인해 거실에서 세르주가 잔다는 건 불쌍했으니까. 불청객에게 편안한 자리를 내어주는 세르주의 배려에 대한 내 나름의 생각이었다. 옆의 자리가 있는데 굳이 춥고 불편한 곳에서 집주인을 자게 할 수는 없으니까.

 


누군가랑 같이 이렇게 자는 것은 오랜만이야.

 


잠에 든 줄 알았건만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혼하고 난 지금은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애인이라도 있는 거 아닌가? 침대 크기를 보며 생각도 했었지만 아닌 모양이었다. 말은 비교적 덤덤했지만 외로움이 묻어났다. 모른 체 자는 척을 할까 생각하다 가만히 말을 받았다.

 


수련회 온 거 같지 않냐.

그렇다고 하기엔조용하지. 소리가 너무 없다고 할까.

이반이 있으면 시끌벅적 했을 텐데.

그러게 말이야. 우리 이반 본지도 오래 된 거 같네.

 


평소 대화를 나누는 어조보다는 가라앉아 있었다. 잠에 들기 직전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상대방의 얼굴을 보지 않고 나누는 대화여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잠이 안 올 것 같으면 무드등이라도 틀어놓을까?

 


내가 불편한 건 어떻게 알았는지 세르주가 이불을 뒤척거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옆의 선반에 놓여있던 무드등을 틀었다. 파도의 물결이 어두운 방 안을 메우며 펼쳐졌다. 작은 무드등으로부터 인위적인 불빛이 벽지와 천장을, 공간을 메웠다. 한날 그런 작은 물건이 뭐가 도움이 될까 싶어 사 본 적이 없던 나는 듬성듬성 빛이 생겨난 공간 속에 잠기고 나서 생각을 철회했다. 밤의 파도였다. 일렁이는 물결이 펼쳐지는 걸 가만히 보고 있자니 어쩐지 안정이 찾아들었다. 가물가물 눈이 감겨오는 걸 느끼며 의식이 꺼져드려 하는데 목소리가 들렸다.

 


손 물어뜯는 버릇도 없으면서. 데일밴드는 왜 뗐어.

불편해서.

해야 빨리 아물어. 다시 손 내봐.

기껏 잠들려는 사람에게됐어.

어허? 무슨 고집이야? 일 나가잖아.

 


작업을 할 때는 장갑을 끼니 괜찮다고 말을 하려던 말은 세르주가 내 손을 이불 속에서 끌어낸 바람에 이어지지 않았다. 세르주가 어느새 침대 위에 앉아 있었고, 내 손가락을 이리저리 훑어보고 있었다. 어쩐지 머쓱했다.

 


거봐. 벌어져서 피 나잖아.

굳었어.

 


대충 그렇게 말하며 손을 빼려는데 베인 손가락이 세르주의 입술에 닿았다. 그러더니 말캉거리는 혀에 닿았다. , 살갗 사이로 베어드는 타액이 쓰려 소리가 목 안으로 삼켜졌다. 핥았다가 피가 나는 손가락을 빨아들이더니 입술이 떨어졌다. 나를 보는 그 얼굴은 평소와 같았다.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자각 없는 행동이 통증과 같이 아렸다.

 


뻥치시네. 안 굳었잖아.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잖아.

 


그의 손에 잡힌 내 손을 뺀다. 빼려고 했다.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단단한 악력이었다. 밴드 붙여줄게. 이번에는 떼지 마. 언제 챙겨둔 건지, 주머니를 뒤적거리자 데일밴드가 흩어졌다. 이번에는 캐릭터 밴드가 아니었다. 그게 싫어서 뗀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여전히 포인트를 못 잡는구나, 세르주. 너는. 그가 손가락에 밴드를 감아주는 걸 말없이 지켜보는데 세르주가 내 안색을 보며 갑자기 반대쪽 손을 뻗었다. 뭐라 할 틈도 잡지 못하고 그의 손이 얼굴을 만지는 걸, 눈을 깜박거렸다.

 


표정이 왜 그래? 어디 아파? 아까 먹은 카레에 체했어?

 


밴드가 감긴 손가락이 아니라 내 손을 만지작거린다. 그러고 보니 손이 찬 거 같아, . 그냥 시켜먹을 걸 그랬나초조한 어조였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자리 잡은 손의 이음새 부분을 누르며 다른 손으로는 이마를 짚는다. 열은 없네. 속 많이 안 좋아? 소화제라도 줄까? 물어보는 어조는 다정하고 눈은 걱정이 가득해서. 그 눈 속에 비친 내 모습은.

 


모르겠어.

 


세르주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손을 잡고 있어도, 너를 보고 있어도 모르겠어.

 


그의 양손이 내 두 손을 잡아왔다. 체온이 높은 손은 따듯했지만 긴장하고 있는지 땀이 느껴졌다.

 


마크. 말로 하지 않으면. 알 수 없어.

 


세르주의 표정이 파도의 물결에 따라 기이하게 비춰졌다. 나는 내 손을 잡고 있는 세르주의 손을 맞잡았다. 그를 끌어당기자 균형을 잃고 상반신이 기울었다. 거리를 좁히고 나서부터는 충동적이었다. 입술에 입술을 맞댄 건. 섬세하다한들 별로 신경을 쓰진 않는지 표면은 거칠었다. 시선이 교차했다. 붙였던 입술을 떼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도 많아. 세르주.

 


그를 잡은 손을 놓았다. 침대에서 내려가려는데 팔이 끌어당겨졌다. 고개를 돌리려했을 때는 그의 얼굴이 눈앞에 있었고 입술이 닿아있었다. 혀가 들어왔을 때는 눕혀진 몸이 침대 위의 이불에 파묻혀 있었고 손이 잡혀있었다. 그와 마주한 눈 속에서, 밑바탕에 깔린 기저로부터 나와 같은 감정을 읽었다. 우리의 외로움은 서로가 알지 못했기에 생겨난 것이었고 그랬기에 서로를 그리워하며 갈망했다. 언제부터 엇갈렸었던 건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왜 우리는 이제서 닿을 수 있게 된 것일까. 지금이라도 닿을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해야 할까. 알 수 없었지만 서로가 구명 조끼라도 되는 것마냥 끌어안았다. 불빛이라고는 파도의 무드등이 전부인 그 공간 속에서 어둠과 함께 녹아들며 침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