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ㅇrㅁr데. 가이드버스 AU. ㅂ살리 ㅜ모차
※ 가이드 살리에리(31) x 에스퍼(초능력자) 모차르트(26).
※ 살리에리는 전생 기억 O
※ 등장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관계로 현대의 음악관이나 작곡가의 유명세는 반영하지 않습니다. 살리에리가 극 중에서 모차르트에게 느꼈던 감정 정도만 반영합니다.
살리에리는 어렸을 적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의 근원지를 손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악기 구성의 조합 따라 특색이 달라지는 음악처럼 고유의 파장이 공명하듯 제 귀에 들려왔다고 하는 편이 좀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이 ‘비표준화 현상’이 살아가면서 좋았는가, 나빴는가?
이분법으로 나눠진 설문지를 준다면 살리에리는 미간을 좁힌 채 종이를 한참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신음을 흘렸을 지도 모른다. 5년 전, 센터로 들어가 훈련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살리에리는 이걸 자신의 재능이라고 생각해보지 못했을 만큼 평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살리에리는 ‘소리로 파장을 느끼는’ 능력 같지도 않은 감각을 기껏해야 위기 속에 발휘되는 감이라고 생각했다.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꼈을 때 그 곳을 가지 말아야겠다 싶은 일종의 미신에 가까운 직감. 지나고 보면 사건 사고가 터져있어 ‘내 촉이 나쁘지 않구나’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정도. 이렇게만 보면 소소한 특혜를 입은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피곤에 지쳐 쉬고 싶을 때는 소음을 전부 차단하고 싶었지만 무슨 짓을 해도 귓가에 잔향(殘響)이 남고는 했다. 살리에리는 그 이명(耳鳴)이 고질병인 줄 알았다.
살리에리는 본인 스스로 음악에 뜻을 두고 있어 제 청각이 민감하다고만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예리한 감각을 갖고 있는 거라고.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절대음감과 상대음감을 느끼는 것처럼 평범한 사람들보다 그 외의 것들도 더 많이 들리는 것일 거라고.
예민한 성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살리에리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현상 일부를 무신경하게 치부해버리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건 무릇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잘못은 아니었다.
‘신은 나에게 자비로움을 베푼 건지, 아닌지.’
살리에리는 한쪽 벽면에 걸린 커다란 십자가를 바라본다. 팔을 벌려 지휘를 하던 누군가의 뒷모습과 빼닮은 형상을. 회개하라며 저를 집어삼킬 것처럼 구는 압도적인 크기의 십자가를.
낮 시간대는 따사로운 햇빛이 스테인드글라스 벽화를 투과해 색색의 빛이 건물 안으로 산산이 부서진다. 프리즘처럼 여러 색을 지닌 빛의 파편들이 십자가와 성당 안에 있는 신도들을 점점이 뒤덮는다. 아름다운 광경은 늘 이런 식으로 존재한다. 고개를 숙이자 두 손을 모아 기도하던 흰 손 위로 목에 걸려있던 십자가 목걸이가 걸쳐지듯 제멋대로 흘러내렸다.
‘형벌인지 아닌지는 이번 생에서 체험하라는 건가.’
맞물리듯 얽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살리에리는 성경 구절을 외우며 눈을 감았다.
‘정말인지 지독한 삶이군요. 시뇨레(Signore).’
맞잡은 두 손 아래로 작은 십자가가 투둑 떨어졌다.
[살리모차] Pieta 1
‘소리’와 관련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이 음악성이 아닌 에스퍼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살리에리는 지독한 회의를 느꼈다.
‘이번 생에도 평범하게,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곁에서 지켜보라는 뜻인가? 보조나 하면서?’
21년간 의심치 않았던 암묵적인 교리가 깨지고 찾아든 상실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포기와 수긍은 빨랐다. 어느 시점부터 제가 살지 않았던 전생의 기억이 머릿속에 심어져 있어 자신이 어떤 위치에 서있는 사람인지 객관적으로 납득하기가 쉬웠던 걸지도 모른다. 다만 저에게 주어진 역할이 고작 가이드에서 끝난다는 것을 알고서 살리에리가 느꼈던 감정은 분노였다.
‘나는 당신을 용서했는데, 어째서 당신은 나를 아직도 용서하지 않았습니까?’
전생으로 추측되는 제 것 아닌 기억과 추악한 감정이 융합되지 않은 채로 뒤섞였다.
‘한 사람을 파멸로 내몰았던 행동이 정확하게 따져보면 지금의 제가 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일로 이번 생에 불이익을 주시려는 거면 저도 정말 할 말이 많습니다. 이번에 새로운 삶을 주셨으면 지금의 저에게 기회를 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번 생의 저는 당신을 위해 신실한 신도로 살아갈 것을 맹세합니다. 제가 원하는 건 사회에서 떠들어대는 초인적인 힘이 아닙니다. 당신을 찬양하고 세상에 수놓을 수 있는 아름다운 음악을…’
살리에리는 제 억울함을 신에게 호소하는 건지 시위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태도로 예배에 꼬박꼬박 참석했다. 제가 벌인 일도 아닌 악행에 대한 죗값을 이번 삶에 치러야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했다. 전생에는 질투에 눈이 먼 나머지 추악한 행동을 해서 벌을 받은 거라 치더라도 이번 생은 달라야 하는 거 아닌가.
20대 초반만 해도 살리에리는 자신이 음악 없이는 살 수 없을 거라 굳건하게 믿고 있었다. 아마 저런 기도를 올렸던 것도 작곡 시간에 내야 할 과제가 지나치게 풀리지 않았던 시기였는지, 슬럼프에 빠진 시기였는지 그랬던 것 같다. 당시 음대생이었던 살리에리에게 커다란 불행이 주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뜻을 두고 있는 관심 분야와 재능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절망에 가까웠다.
‘당신이 이런다 한들 내가 가이드로 살아갈 것 같습니까? 초능력자들이 폭주해서 죽든 말든 저와 무슨 상관입니까. 당신이 그들에게 과한 능력을 선사한 바람에 대가를 치르는 거라면 공평하지 않습니까? 그 힘을 억제한답시고 타인을 이용하는 지금의 구조가 진정 올바르다고 보십니까? 심지어 페어를 맺는 조건이 사랑도 아니지 말입니다… 하하. 당신은 세상을 위한다며 사람을 반쪽짜리보다도 못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에스퍼는 가이드가 없으면 위험 수치가 누적되어 폭주한 나머지 죽고, 가이드는 에스퍼가 없으면 갖고 있는 재능이 초라하다 못해 무색할 정도로 쓸모가 없죠. 페어를 찾지 못해 당신이 선택한 사람들이 죽는다면 그 또한 운명이겠지요! 예나 지금이나 당신에게 사랑을 과하게 받은 이들은 오래 살지 못하는군요. 정말 가엽게도…’
원망할 대상이 신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좋지도 않은 전생의 기억을 저에게만 준 것도, 그토록 원하는 것은 단 한 번도 저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도.
‘당신의 곁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거두고자 하는 것이 진정 당신의 뜻이라면, 저는 당신에게 받을 영광을 거부하겠습니다. 당신이 선택한 재능 있는 사람들만이 당신에게 사랑을 받아도 충분하겠죠. 제 몸을 불살라 에스퍼에게 도움이 되느니 차라리 평범한 삶을 평온히 누비다 죽는 게 낫겠군요. 전생에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후, 32년간 아주 무료하고 따분한 삶을 살았던 것처럼!’
치기 어렸던 시절. 신에게 저항하듯 이를 악물며 품었던 대적감이야 지금에서는 정확하게 생각나지 않는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니.
살리에리는 제 목에 걸린 십자가를 손에 쥔다. 음악적 재능이 그에게 주어지지 못했을지언정 소리와 관련된 능력은 이 시대의 살리에리에게 명성을 안겨주었다. 손에 주어진 카드가 유리하다면 사용하면 그만이다. 흘러가는 바람의 결대로 변화의 흐름에 적응하는 행동이 나쁜 것만은 아닐 테니.
살리에리는 가끔 생각한다.
왜 자신만이 전생을 기억하고 있는 건지를.
날이 추워진 탓인지 찬 바람을 쐬었다고 두통이 몰려온다. 지근거리는 머리를 손목 안쪽 뼈로 꾹꾹 누르며 카페 안으로 들어선다. 출근은 정말 진절머리 나지만 별 수 없었다. 귀족에게 봉사하든 국가에게 봉사하든 전생이나 지금이나 결국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 것을. 카페인과 당분으로 기운 빠지는 오전을 버티는 수밖에.
[ 아직 커피 사기 전이면 아아메랑 아이스 바닐라라떼, 샌드위치 2개. 케이크도 한 조각 사와라. 중요한 손님이 와있어서. 종류는 네 안목에 맡긴다. 너도 먹을 거면 네 것도 사고. ]
주문을 마치고 계산하면서 핸드폰을 보니 드물게도 아침부터 메시지가 와있다. 발신인은 센터의 인사를 총괄하는 실장이다. 하다못해 이런 심부름까지 시키는군.
[ 영수증 청구할 겁니다. 실장님이 제 것까지 쏘세요. 심부름 값이라 생각하겠습니다. ]
답장은 확인하지 않은 채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곤 살리에리는 진열대에 놓인 케이크를 유심히 훑어본다. 취향이라도 대략적으로 말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잠시 고민하다 살리에리는 직원을 부른다. 조각 케이크를 상자에 포장하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는 동안 살리에리는 손에 들린 따듯한 커피를 손난로 대용으로 감싸고 있다 한 모금 마신다. 아무래도 오늘은 바쁠 예정 같다.
*
“어젯밤에 센터에 등록하지 않고 버팅기고 있던 에스퍼를 포획했다나봐. 지금 29번방에 있데.”
“어떻게 여기로 데려왔데? 고분고분 제 발로 걸어 들어오지는 않았을 거 아냐. 능력을 썼으면 지금 대기하고 있는 가이드를 다 데려가도 어려웠을 텐데? 여기 남아 있는 건 훈련을 얼마 받지 않은 새내기들뿐이잖아.”
“걔넨 방사형 가이드도 간당간당 할 텐데? 고참들은 M지역 폭발 건으로 파견갔지 않았나?”
“그게 나도 전해들은 거긴 한데… 난폭하다기보다는 좀 이상한 사람 같던데? 왜, 괴짜 있잖아. 여기로 이송되는 내내 내려달라고 버둥거리기는 했지만 능력은 전혀 안 썼데.”
“에이, 설마. 아. 야야. 혹시 일반인 데려온 거 아냐?”
“안 그래도 본인은 그렇게 주장한다더라. 엄한 사람 붙잡아두는 게 여기 방식이냐면서 툴툴거린다던데?”
“와. 일반인 데려온 거면 인사팀 징계의원회 끌려갈 텐데.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지문을 찍고 게이트를 통과했을 때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직원들의 웅성거림으로 소란스러웠다. 새로운 에스퍼가 센터로 올 때면 자주 보는 모습이다. 신고식마냥 떠들어대는 모습이 입사 초창기만 해도 신기했지만 5년간 센터에서 지냈다보니 이제는 이 풍경도 익숙하다. 실장이 있는 사무실을 향해 걸어가는데 전방에서 흰 가운을 입은 동료들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연구팀 직원들이다.
“이번에 온 에스퍼 말이야. 규정을 제대로 모르는 거 아니야? 파트너만 있으면 굳이 여기서 지내진 않아도 되잖아. 왜 지금까지 등록을 안 하고 있었데? 매번 자기를 찾아와 쪼아대는 것도 귀찮을 텐데.”
“어디로 쏘다니는 건지 얼굴 뵙기가 참 힘든 거 같더라고. 거주지의 주소로 가도 부재중일 때가 많았다나봐. 능력을 안 쓰니 위치 추적도 어려웠고.”
“그러겠네. 휴대폰 GPS 동의는 당사자가 사고를 쳐야만 협조해서 받아낼 수 있으니까 말이야.”
“와… 그건 그것대로 특이한 에스퍼네. 능력 과시하다 걸린 놈들이 태반인데. 자신이 에스퍼인지 몰랐던 거 아냐?”
“글쎄. 더 자세한 건 말을 나눠봐야 알겠지만 한참 경계한 걸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던데.”
“늦은 밤에 쳐들어가서 데려왔다며. 낯선 사람들이 갑자기 침입해서 자기를 연행한다면 누구라도 그럴 법 하지 않냐?”
“보아하니 인사 채용팀도 이번 달 실적 채우려고 성급하게 움직인 거 같지만… 맞든 아니든 이번에 말 나오겠네.”
“알아서 감당하겠지. 근데 중앙 시스템 기기에 파장이 잡히긴 한 걸 보면 에스퍼가 맞긴 할 걸? 발현이 되었는지 여부는 모르겠지만 이번 기회에 규정도 알려주고 센터에 등록시킬 겸 해서 모셔온 거지.”
“그러겠지. 어쨌든 관리가 안 되면 우리 입장에선 곤란하니까.”
“이번 에스퍼는 평범하게 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안타깝네. 원하지도 않는 관심을 받으니.”
“어쩌겠어. 평범하게 태어나지 못한 것도 불운한 재능이지.”
평범하지 못한 것이 불운하다. 사회에 만연한 분위기가 그랬다. 당사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에스퍼의 초능력이 발현되면 국가에 귀속되어야 하며 사회 환원이라는 명목 하에 자신이 가진 재능을 기부하며 살아야 했다. 저항한다고 반정부 테러 조직으로 찍혀봐야 좋을 건 없으니 사실상 그들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초능력도 결국 힘인지라 에스퍼가 큰 힘을 사용할 때면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대로 능력자의 몸에 부작용이 따르는데 그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역할이 가이드였다. 시한 폭탄이 터지지 않도록 제어장치를 걸어주고 깎인 원기와 체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보조해주는 사람. 에스퍼와 달리 가이드는 꼭 이 길을 선택할 필요는 없었지만 공무원이라는 타이틀이며 직원 복지와 연봉이 좋은 편이었으니 메리트는 충분했다. 보수가 높다는 건 달리 말해 위험을 동반한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보아하니 인사팀에서 일을 저지른 모양인데.”
“아, 살리에리 교관님. 어째 오늘은 짐이 많아 보이는데요?”
자연스레 대화에 끼어든 살리에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 대신 손에 들린 짐을 보였다. 커피 캐리어에 담긴 커피와 투명한 비닐봉지에 담긴 샌드위치는 익숙했지만 케이크 상자에서 한결 같이 의문을 보였다.
“오늘 누구 생일이에요?”
“음~ 제가 한 번 맞춰볼까요? 이거 교관님 아침이죠?”
“내가 디저트를 좋아한다고 해도 이른 아침부터 빈 속에 먹진 않는단다.”
“에이. 디저트 광인이라 아침에도 케이크 드실 줄.”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보다 누구 셔틀이에요?”
“실장.”
그러자 아, 나지막한 탄성이 터졌다. 그러고 보니 그 에스퍼, 아직 아침도 못 먹었겠네. 그래도 손님인데. 혀를 끌끌 차자 옆에서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데려왔으면 밥은 먹이는 게 도리지. 지금 시간이면 배가 고프겠네. 사고를 터트린 범인도 아니다 보니 얼굴엔 다들 동정표가 가득했다.
“짐이 많아서 핸드폰은 열어보지도 못했는데 내가 가야할 곳이 정해졌네.”
“수고하세요.”
“맞다. 이번에 온 에스퍼. 당분간 교관님이 맡아야 할 수도 있어요.”
제 갈 길 가려던 살리에리의 발걸음이 멎었다. 고개가 틀어졌다. 하? 반문하듯 한 쪽 눈썹만 올라간 모습을 보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얼굴이었다.
“금시초문인데?”
“지금 고참들, 폭발 사건 때문에 M지역으로 파견 나갔잖아요.”
“아무래도 아직 능력치를 모르니 신참들을 붙일 수는 없어서…”
아까 주위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랬었지. 살리에리는 별 다른 표정 변화 없이 수긍하며 말을 붙였다.
“그 에스퍼. 어제 밤에 왔다고 들었는데 센터에서 날을 샌 거야?”
“수면실에서 푹 잤어요. 잠자리가 불편하다고 하도 찡얼대서 실장님이 특별히 해외에서 공수해온 전기장판이랑 극세사 이불을 넣어줬더니 그대로 푹 잠에 들었다던데요? 매번 실장님이 전기장판 자랑해대서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효과 정말 좋은가봐요.”
“어떤 의미로는 태평하네. 너희는 만나봤어?”
다들 고개를 저었다. 하기야 어제 밤에 왔으니 연구팀도 얼굴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새로운 에스퍼를 대면할 때는 어떤 상황에 처할 지 모르니 안전을 위해 가이드를 동반해야 했는데 지금 남아있는 인력으로는 마땅한 사람이 몇 없었으니 타당했다. 이래서 나에게 심부름을 시켰던 거였군. 퍼즐을 맞추며 살리에리는 짧게 숨을 돌렸다.
“직원들은 29번 방에서 대기 중이야?”
“네. 혹시 모를 능력 방출을 대비해서 방에 억류 장치는 이미 가동해둔 상태에요.”
“알았어.”
살리에리는 방향을 틀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층수를 누르고 기다리자 투명한 유리관이 위로 저를 당기듯 올라간다. 창 너머로는 센터에 출근한 사람들이 개미 떼처럼 한 눈에 들어온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익숙한 풍경이다. 갑갑함이 몰려온다. 조만간 한가해지면 휴가라도 써야지. 현실 도피하며 기분 전환으로 여행 계획을 그리는 동안 목적지에 도착한다.
살리에리는 발을 내딛으며 복도를 거닌다. 29번 방 앞에서 지문기에 검지를 가져대자 제 이름이 뜨더니 문이 열린다. 15평 정도의 방 안은 가로로 넓은 테이블과 양면으로 의자가 놓여있고 뒤로는 특수강화유리로 이루어진 칸막이가 벽면 테두리를 에워싼 것처럼 둘러싸져있다. 준비는 다 되었다더니 유리벽 너머에는 시스템 준비를 해둔 직원들이 앉아 있었다. 감시의 목적이 명백한 방은 흡사 취조실 같단 생각도 들지만 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설계된 공간이다. 들어서자마자 실장과 눈이 마주쳐 살리에리는 손에 들린 걸 보였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는지 초췌한 실장이 반가운 얼굴로 그를 맞았다.
“어여! 많이 기다렸어.”
“배고프면 배달이라도 시키지 그랬어요.”
“귀하신 손님께서 먹고 싶다고 요청한 메뉴가 샌드위치여서. 때마침 자네가 생각났지.”
그제서 살리에리는 실장 마주편에 앉아있는 백금발의 뒤통수를 쳐다봤다. 입구로부터 자리가 등지고 있던 탓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소문의 주인공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실장의 말이 거슬렸는지 항의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본인 입으로 귀하다면서. 귀한 손님을 이런 식으로 대접해요? 밤에 갑자기 난입하더니 나를 납치해놓고,”
“그건… 정말 죄송해요. 직원들이 그렇게 데려올 줄은 몰랐어서… 그래도 잠자리는 편했죠? 마음에 든 것 같은데 사죄의 뜻으로 그 전기장판이랑 이불, 선물로 줄게요. 그거 수입품이라 구하기 힘든 거에요.”
“이런 식으로 나를 설득하면 내가 넘어갈 줄 알고… 약속한 거예요? 나중에 딴 말 하지 말아요.”
“그럼요. 귀한 시간을 내주셨는데 그 정도는 해드려야죠. 식사나 하죠.”
어떻게 구슬린 건지 새로운 에스퍼는 고분고분했다. 아까 들은 이야기나 지금까지 에스퍼들을 만날 때마다 겪었던 일화를 떠올려보면 온순한 편이다. 이 에스퍼는 자신이 무슨 능력을 지녔는지는 아직 모르는 건가? 아니면 숨기고 있는 건가. 생각은 지금 해봐야 소용없을 것이다. 어차피 검사를 하기 전에는 단편적인 것밖에 알 수 없으니. 살리에리는 제 손에 들린 걸 테이블에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아.
시선이 맞았다. 너무 놀란 나머지 살리에리는 눈을 크게 뜬 채 그대로 굳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 기억 아닌 환상 속에 있던 사람이.
“살리에리. 인사해. 이 쪽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이번에…”
실장이 뭐라고 떠들었지만 뒷말은 좀처럼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살리에리는 제 눈앞에 있는 금발의 청년을 바라봤다. 청년은 의아한 얼굴로 멀뚱멀뚱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살아생전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심장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가열차게 뛰었다. 몇 십년간 오랜 기억 속에 파묻혀있던 대상이 눈앞에서 겹쳐졌다. 그 감정은 전생에도 그랬던 것처럼 한 가지로는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복합적이라 뭐라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저 살리에리는 그 사실 하나만 알았다. 이 순간을 위해 지금까지 살아온 거라고.
“살리에리. 내 말 듣고 있어? 왜 그렇게 넋 놓고 있어. 둘이 아는 사이야?”
실장이 살리에리에게서 모차르트로 시선을 옮기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초면인 것 같은데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현실로 돌아왔다. 살리에리는 경직된 얼굴을 애써 어색한 미소로 숨겼다.
“… 아. 죄송합니다. 제가 아는 사람과 닮아서…”
“그래요? 그런 말은 처음 듣는데. 나중에 괜찮으면 저랑 닮았다는 사람 소개시켜 주세요. 그쪽 반응 보니 무슨 도플갱어라도 본 것 같아서… 아, 실례.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안토니오 살리에리. 살리에리라고 편하게 부르세요. 모차르트라고 불러도 될까요?”
“에, 뭐. 편하신 대로?”
상대는 저와 달리 여전히 평온한 얼굴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는 것 같은 태도였다. 금발의 청년은 비닐봉지를 끌어당기며 샌드위치를 꺼내더니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비닐을 뜯자마자 허겁지겁 바로 입에 무는 게 배가 상당히 고팠던 모양새였다.
“먹는 동안엔 말 안 걸게요. 편안하게, 천천히 먹어요. 부족하면 제거 한 쪽 더 줄 테니까. 빨리 먹으면 체해요. 커피도 좀 마셔가면서 먹어요.”
실장은 어린애를 대하는 것처럼 살갑게 모차르트에게 커피를 건네고는 자기 몫의 샌드위치를 씹으며 아메리카노를 넘겼다. 살리에리는 겉옷을 남는 의자 등받이에 걸쳐두고서 실장 옆에 앉았다. 다람쥐처럼 볼에 한 가득 넣고 우물우물 씹고 있는 모차르트를 보니 묘한 기분이었다. 어쩐지 눈시울이 뜨거웠다. 증오와 질투만이 남은 줄 알았는데 실은 그를 마음속 깊이 그리워하기라도 했던 건지. 연민인지 죄악감인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살리에리는 지금에서 제 삶을 이해했다. 음악의 길을 걸으려다 센터 소속으로 길을 틀게 된 것도, 전생의 기억을 갖고 태어난 것도.
‘모차르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기묘한 감각이었다. 자신만 그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 좋은 기억은 아니었으니 그가 기억을 못하는 편이 나았다.
먹먹함이 밀려왔다. 아직까지도 환영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살리에리는 애써 흘러나올 것 같은 감정을 틀어막기 위해 얼굴을 굳혔다.
그동안 신이 저에게 내린 소리와 관련된 재능은 전생의 죄업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이번에 내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목에 걸린 십자가를 손에 가만히 쥐었다. 신의 농간이라면 나에게 기회를 준 걸까. 살리에리는 눈을 감았다. 아직도 전생에 들었던 레퀴엠의 음표들이 뇌리에 박힌 것처럼 재생되어 지금까지도 머릿속을 흘러다닌다.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살리에리는 전생을 파노라마처럼 떠올린다. 이번 생에서도 깰 수 없었던 그의 음악을.
글쎄. 이건 무슨 기회일까.
그의 곁에서 진정으로 죄를 뉘우칠 기회?
아니면 그를…
살리에리는 가늘게 눈을 뜬다. 금발의 피사체가 시야에 가득 찬다. 모차르트가 시선을 느끼고 살리에리를 쳐다봤다.
“식사 하셨어요? 살리에리만 안 드시는 거 같아서.”
천진하게 묻는 말에 살리에리는 잠시 뜸을 들였다.
“저는 원래 아침은 안 먹어서요.”
시선이 살리에리를 훑었다. 맑은 눈동자에 악의라고는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마르셨나 봐요. 그러다 쓰러지면 어떻게 해요? 뭐라도 좀 먹어야 힘이 나지.”
모차르트는 빨대를 물고 얼음이 녹은 바닐라 라떼를 빨아댔다. 그래, 이번 생은 많이 먹어야지. 먹는 걸로 사람을 괴롭히는 건 정말 몹쓸 짓이니. 수척했던 모습이 떠올라 살리에리는 저도 모르게 감상에 젖다 작게 고개를 흔든다. 내가 할 일을 망각하면 안 되지. 공과 사는 구별해야 하니. 이제부터가 중요한데. 살리에리는 쥐고 있던 십자가를 꽉 움켜쥐었다.
시뇨레(Signore). 경계를 허물듯 오가는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버틸 수 있게 해주옵소서.
당신이 저를 그에게로 보낸 이유를 부디 제가 실천할 수 있도록.
+ (센ㅌI넬버스AU=가이드버스AU) '센ㅌI넬' 용어가 저작권에 걸려서 '에스퍼'로 통칭하면 괜찮데요. 세계관 설정 모르시더라도 문제 없도록 스토리 흐름상 필요한 부분에는 설명 넣을 생각이에요. 이능력자 세계관인데 초능력 대립물보다는 둘의 관계성 위주로 진행되는 걸 보고 싶어서 끌고 왔습니다.. 양해를...
ㅇrㅁr데..... 페어본진 웅범이 왔는데.. 역병으로 인해 회차도 뺏기고... 이런 말이 투정으로 비춰질 수 있어서 괴로운 요즘이네요.. 공연이 무사히 다시 재개되길 진심으로 바라며...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기만을 간절하게 바랍니다... 웅범 회차 줄은 건 정말 울고싶네요......
제가 쓰면 마이너일 확률이 높아서 안 쓰고 싶었는데... ㅇrㅁr데 연성 보고싶었는데 검색하면 모5락이 나오더라고요... 제 연뮤 입문작이 모5락이라 그쪽도 잘보긴 하는데 지금은 ㅇrㅁr데가 너무 보고싶어서.. 여튼 많이들 연성해주시고 저 태그 좀 걸어주세요... @ ffv_back / @ epitaph_no 어느 쪽이든 저랑 웅범 이야기 해주실 분...
ㅂ살리 정말 까리하고 잘생겼어요. 독기 품은 진실된 왼을 정말 사랑한답니다.. 다양한 감정을 그라데이션으로, 경외감에 차있다 말려죽일 것처럼 변주 주는 온도차 최고에요. 이번 소설에서 살리는 감정 변화 위주로 다채로운 이미지를 넣는 게 목표입니다.. ㅜ모차 첫공 때 컬처쇼크가 아직도 남아있는데 지금은 익숙해져서 첫공 때 텐션 내심 그립네요. 공연 보기 전만 해도 전 제가 리버스를 먹을 줄 알았답니다.. 2막넘보고싶다.. 웅범을 한 달 후에나 볼 수 있다니... 시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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