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통사고를 당한 32살의 마크가 몸이 어려져 기억을 가진 채로 12살의 어린아이가 되고, 세르주가 어려진 마크를 마크의 숨겨진 아들이라 생각하고 후견인으로서 같이 동거하는 이야기.

※ 사망, 트라우마 소재 O.

※ 한참 후반 즈음에 수위 예정.(시기는 37살 세르주 x 17살 마크) 비윤리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 순차적인 시간 흐름으로 진행되지만은 않습니다. (대략적인 시기가 어느 쯤인지는 알 수 있도록 적고 있습니다.) (ex.현재>과거>현재>과거>미래>ect...)

※  수위가 나오기 전까지는 평탄하게 흘러갈 것 같습니다. 

 

 

 

3 멈춰버린 시계

 

 

 

세르주는 빈말로도 아이를 잘 돌보는 성격은 아니었다. 의사라는 직종에 몸을 담고 있는 이상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직업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살가운 성격도 아니었다. 자신에게 오는 어린 환자들은 잘 돌봤지만 그건 짧은 시간 만나는 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일과를 따져본다면 평일은 병원으로 출근했다 퇴근하면 맥주캔을 까서 티비를 보거나 친분 있는 사람들과 식사를 하며 가볍게 술자리를 가졌다.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주말은 전시회를 다니면서 미술 작품을 감상했고, 요리는 보통 밖에서 먹거나 간단한 인스턴트로 때우는 편이었다. 이혼하기 전에는 당시 아내가 챙겨줘서 틈틈이 챙겨먹는 것 같긴 했지만 독신으로 전락하면서는 식습관의 균형이 깨진 지 오래였다. 할 수 있는 요리라고는 소세지를 굽거나 간단한 계란 후라이 정도가 전부였다. 운동을 좋아하는 것이 그나마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요지는 그가 아이를 돌보는 데에 흥미며 소질이 없다는 거였다.

 

아무튼 그런 세르주가 마크의 남겨진 아들을 자신이 데려고 살겠다고 했을 때 이반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세르주. 충동적으로 결정한 거 아니지?”

 

 

우스갯소리를 하는 양 이반이 너랑 안 어울리는 말 한다. 으이구.” 말을 덧붙였지만 세르주는 말 대신 자신이 쓰고 있던 서류를 내밀었다. 미성년자인 마이크의 권리는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법적 대리인이 관리한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대리인의 이름 칸에는 'Serge'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때서 이반은 세르주가 한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얼굴을 굳혔다.

 

 

애를 키운다고? 어떻게? 부모랑 같이 집으로 돌아가다 졸지에 차 사고로 잃어서 당분간 상담 치료는 받아야 할 거 같던데. 그게 아니더라도 신경이 쓰이거나 손도 많이 갈 걸? 아직 나이가 어리잖아. 너를 나쁘게 말하고 싶은 건 아닌데 네가 한가한 사람도 아니고… 무리야. 세르주. 그냥좋은 사람 만날 수 있도록 입양 절차 잘 밟게 도와주자. 응? 그게 최선이야.”

 

 

이반은 세르주를 조곤조곤 타일렀다. 마크에게 숨겨진 자식이 있는 줄도 몰랐지만 안타까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친구와는 별개의 이야기였다.

 

마크의 시신은 여전히 발견되지 않았다. 벼랑이라 위험하지 않도록 막아둔 가드펜서가 파손된 걸 보면 충돌하고 나서 불이 붙었고, 정신없이 나오던 도중 바다로 떨어졌을 확률이 가장 높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기적이 발휘하지 않는 이상 벼랑의 높이는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높이였다. ‘실종이라고 표시되어있지만 사실상 사망이나 다름없었다.

 

 

그 날 있던 교통사고는 뉴스에도 실렸다. 자신의 친구만이 아닌 그 뒤의 차들도 연달아 추돌 사고가 이어졌다. 정말로 불운한 사고였다. 기름이 샜는지 불이 붙어 소방차가 한참 도로를 진압하는 광경이 화면에 보도되어졌다. 보기 드물게 사상자가 많았다. 큰일이네. 이반은 뉴스를 보며 어쩐담, 생각했지 그게 자신의 가까운 사람에서 일어난 일일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이반만은 아니고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나중에 연락을 받았다. 세르주와 병원 로비에서 만났을 때에는 서로의 모습이 말도 아니었다. 둘 다 혼이 나간 모습이었다.

 

 

- 마크는 괜찮을 거야!

- 당연하지.

 

 

허둥지둥하는 이반과 달리 세르주는 비교적 담담한 얼굴이었다. ‘아마 그 녀석 멀쩡한 얼굴로 우리 반겨줄 거야. 예전에도 다리 하나 부러졌을 때 그랬잖아.’ 중얼거리더니 말을 덧붙였다.

 

 

- 좋은 생각만 하자. 별일 없이 무사히 깨어날 거야. 마크가 일어나면 그 녀석이 좋아하는 과일이나 깎아주자. 걔 뭐 좋아했지? 사과? 오렌지? 포도?

- 글쎄. 이것저것 사가면 그 중 하나는 먹지 않을까? 사과나 배는 토끼 모양으로 깎아주자.

- 나 과일 잘 못 깎으니까 네가 깎아줘. 귀엽게. 사진은 내가 찍을게.

- 마크, 그런 거 유치하다고 싫어하지 않던가?

- 그 반응 보려고 하는 거지. 뭘 새삼스럽게.

 

 

그리고 병원에 마크가 없다는 걸 알게 된 건 입원한 명단을 찾으면서였다. 그들은 병원에 남아있던 경찰에게 제 친구와 친구 아내의 부고를 들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마크는 시체를 찾지 못해 실종이었지만 사실상 사망일 거라고 했다.

 

 

- 실종이면살아있을 수도 있잖아요?

 

 

이반이 금방이고 울 것 같은 얼굴을 했지만 경찰은 사고가 난 현장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을 바라보던 둘의 얼굴이 굳어졌다. 경찰은 벼랑의 높이를 가리키면서 고개를 저었다. 가망성은 없다 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세르주. 마크가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거야 모르는 거지.”

네가 하는 행동을 보면 넌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사망이 아니라 실종이니까.”

그래서, 변호사에게 그의 재산 보호를 신청하고 마이크를 그의 호적에 넣는다고? 마크도 안 했던 것을? 이건 좀 조심스럽지만괜한 짓 하는 거 아냐?”

이반. 지금 네 말만 들어보면. 내가 뭐 나쁜 짓이라도 하는 것 같다? 내가 중간에 마크 재산을 빼앗고 토끼기라도 할 것처럼 보이냐?”

아니. 세르주. 그게 아니라

도와달라고는 안 할 테니까 나중에 보자. 지금은 제출해야 할 서류가 많아서 내가 너에게 신경 쓸 틈이 없다.”

 

 

세르주는 말을 하면서도 서류 봉투에 분리해서 넣고는 앞에 분류 항목을 적어뒀다. 서류 봉투만 눈어림으로 세도 7개는 되어 보였는데 그 중 하나를 풀어 서류를 꺼냈다. 이반은 우물쭈물하다 말을 끝맺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

 

 

마크도 너무하지. 어림잡아 12살은 되어 보이던데. 폴라랑 결혼했던 게 3년 전이고. 결혼 전에 1년 정도 사귀었었지? 적어도 

8

년 전에는 태어났다는 거잖아. 폴라를 만나기 훨씬 전이고. 그러면 폴라의 아이는 아니라는 건데최근에 알았던 걸까?”

그런 것도 있겠지. 안 그러고서 걔가 아무리 성격이 이상해도 그렇지, 출생 신고도 안 했겠어?

그렇지. 마크가 유별난 데가 있긴 해도 그렇게 심성이 나쁜 애는 아니지.”

 

 

이반은 한숨을 푹푹 쉬었다. 차라리 깨어나서 우리한테 실컷 욕먹고 이야기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 말에 세르주는 별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입을 놀리는 이반과 달리 세르주의 손은 서류에 무언가를 열심히 기입하고 있었다.

 

 

머리 아프지 않아? 일반적인 일이 아니라서 제삼자가 하기엔 제약도 많을 텐데.”

. 쬐금? 그래서 유능한 변호사 불렀잖아. 산악 동호회 다닐 때 알게 된 친구인데 이쪽 분야에서는 유명한 사람이야. 성격도 좋지만 일도 잘하고. 빠릿빠릿하더라. 부려먹는 만큼 나중에 술 뜯어낸다고 하던데 그 때 너도 불러줄게.”

아냐. 난 됐어. 세르주. 난 가끔 네 인맥이 넓은 게 부럽다. 마크, 돌아오면 너에게 엄청 고마워해야 할 거다.”

당연하지. 돌아오면 당장이고

 

 

글씨를 쓰던 손이 잠시 멈췄다. 검은 눈이 먼 곳을 바라보는 양 먹먹했다. 침묵이 길어지자 세르주, 괜찮아?” 이반이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고 멍 때리듯 넋을 놓고 있던 세르주가 , 미안. 뭐라고?” 반문했다.

 

 

아니야. 그보다 정말 괜찮겠어? 남의 애 보는 거라 또 힘들 텐데.”

 

 

계획은 있어? 이반이 물었지만 세르주는 구체적인 방안 대신

 

 

나는 현재 독신이니까 애 하나 더 있어도 나쁠 건 없어. 적적한데 잘됐지. 아직 성인이 되려면 몇 년 걸릴 테니 그 동안만 데리고 있으려고. 성인이 되기 전에는 그 녀석도 돌아오겠지.”

 

 

태연하게 말하며 손을 움직였다. 종이가 넘겨지며 팔랑거렸고 만년필이 서걱거리는 소리는 한참 이어졌다. 물끄러미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반이 물었다.

 

 

세르주. 지금 병원 다니고 있잖아. 정말로 괜찮겠어?”

 

 

이반의 말에 세르주의 시선이 옮겨갔다. 어떻게 알았냐는 시선에 네 가방 안에서 처방전과 약봉지를 봤어, 대답이 돌아왔다. 일부로 본 건 아니었다고 덧붙이는 말에 세르주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랬구나. 그는 덤덤했다.

 

 

뭘 그렇게 조심스러워 해? 너도 예전에 정신과 치료를 받았으면서. 나라고 뭐 다를 거 있냐?

 

 

서류 작성을 마친 건지 펜 뚜껑을 닫으며 이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이반은 세르주에게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지 않냐고 말을 하려다 말았다.

 

 

세르주. 네 우울증의 원인은 마크의 죽음이잖아.’

 

 

*

 

 

마이크는 뼈가 붙고 회복이 되자마자 바로 퇴원했다. 마이크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싶더니 그가 말을 일절 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사고를 당한 이후로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세르주는 그를 학교로 보내는 것 대신 상담 치료를 등록했다. 충격이 컸을 테니 그게 나을 거였다. 마이크는 대다수의 시간을 상담 센터에서 보냈고 효과를 보는지 2주가 넘은 시점에서 마이크는 세르주를 보고 아저씨라고 불렀다. 기묘한 호칭이었다. 아직 아저씨라고 불릴 만한 나이는 아니지 않나? 생각하며 다른 호칭을 생각해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형이라고 부르라고 하기엔 양심이 없었고 피가 이어진 것도 아닌데 삼촌이라 부르라고 하는 것도 이상했다. 호칭이야 아무렴 어떠랴 싶었다. 아이는 마크와 같은 얼굴로 세르주 아저씨혹은 아저씨라고 부르며 그를 따랐다. 세르주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아이의 이름으로 아이를 부르지 않았다.

 

 

세르주는 세 달 간 정신과 병원을 들락거렸다. 처음 증상은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어서였다

 

자고 싶은데 잘 수가 없어요. 

 

불면증의 원인을 진단하는 과정 속에 누군가 혹시 주위에 죽었냐고 묻는 문항이 있었고 거기서 마크의 죽음과 관련이 깊다는 걸 알았다. 상담 치료를 조심스레 권유하기에 세르주는 금액과 몇 가지를 더 물어보고 몇 번의 시간을 정해 일정을 맞췄다. 설문지와 같이 병행할 때도 있었고 상담만으로 진행될 때도 있었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 비중이 점점 많아졌다. 부담을 갖지 말라면서 상담사는 세르주의 머리로는 뭐와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을 물어왔고 그 중에는 고등학교 학창시절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질문에 차례로 대답을 하다 문득 스위치가 눌린 것처럼 그대로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정말 많이 좋아했었나 봐요. 그 친구를.”

 

 

그 말이 어째서인지 가슴을 죄였다. 울컥, 목이 심하게 메는 바람에 세르주는 그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상담은 다음에 이어서 하는 걸로 마무리를 짓고 오늘 상담한 시간에 대해서는 횟수를 깎지 않았다. 의아함을 표하니 마음을 연 기념이라고 했다.

 

 

그래도 점점 좋아지고 있네요. 자신의 마음을 마주보기 시작했잖아요. 요즘에도 혹시 잠을 자기 어려운가요?”

약이 없으면, 아직은.”

차차 나아질 거예요. 다음에 봐요.”

 

 

 

감정을 추스르고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저녁이었다. 평소보다 늦어서인지 마이크는 그의 방에서 자고 있었다. 세르주는 잠든 마이크를 한참 내려다 봤다. 거기에는 어린 마크가 곤히 잠들어있었다. 마크와 처음 만났을 때보다도 한참 어린, 초등학생의 모습을 한 채.

 

마지막으로 연락을 했던 게 언제였지.

 

핸드폰을 열면 기록이 남아있었겠지만 세르주는 구태여 보려 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마크랑 무슨 이야기를 했었지. 떠올려봤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 시답지 않은 이야기였을 거였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건 언제였지.

 

 

아이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문을 닫고 거실로 걸어 나온 세르주는 소파 뒤에 걸려있는 앙뜨로와를 바라보았다. 가로 150, 세로 120의 커다란 흰색의 그림을. 한참을 바라보자 흰 그림 속에서 갈색 선이, 파란 선이, 노란 선이아니, 그 그림을 바라보고 있던 친구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가만히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회색의 정장이, 달라붙은 검은 셔츠와 가는 몸이먹먹한 눈으로 그림을 아련하게 바라보던 옆모습이… 어딘지 쓸쓸하게 느껴졌던 그 눈동자가… 기억은 순차적으로 배열되지 않고 콜라주처럼 편집되어 뒤죽박죽 뒤섞였다. 흰 캔버스는 그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마크의 모습으로 가득 채워졌다. 앙뜨로와에 사인펜으로 그림을 그리자 자신을 바라보며 금방이고 울 것 같았던 그 얼굴… 정면, 옆모습, 뒷모습, 측면, 표정, 행동, 목소리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아침이 밝고 있었다. 세르주는 흰 그림을 벽에서 내렸다.

그 그림을 계속 보고 있자니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어서였다.

 

 

32세르주, 12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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